counselling4.jpg

대상: 51세의 미혼 여성 X씨

증세: X씨는 환청으로 두 번이나 문제를 일으켜서 정신병원에 두 번째로 입원을 하고 있는 환자였음

진단: 정신분열증, 대인공포증, 회피적 성격 장애

연결: X씨는 작년 10월 달에 환청으로 생긴 문제 때문에 xxx 정신병원에서 2달간 입원 한 후에 환청이 사라져 퇴원을 하고 약물을 계속해서 복용해 왔으나 올해 5월 달에 다시 환청 문제로 사건을 일으켜서 두 번째로 이번에는 zzz 정신병원에 2달 째 입원을 해 있다고 그녀의 언니가 치료자에게 전화를 걸어 왔다. 그녀의 언니는 정신분열증에 약물 치료의 한계를 절감하고 약물 치료와 정신분석 심리치료를 병행하고 싶다고 연략을 해 왔음

치료 기간: X씨는 그녀의 어머니와 함께 치료자의 사무실을 방문을 했다. 치료자가 2시간 동안 인터뷰 상담을 받아 보고 나서 결정을 하시겠는지 아니면 막바로 6개월간 치료 계약을 하고 심리치료에 들어갈 것인지를 그녀의 어머니에게 물었을 때 그녀의 어머니는 치료 비용을 즉각 지불하고 치료에 들어가겠다고 하고 6개월의 치료 비용을 지불하고 치료에 들어가게 되었다. 다음의 분석 치료는 X씨가 1주일에 4회로 1회 치료 회기에 2시간씩 분석 상담을 시작하면서 치료 3회기 즉 6시간의 분석 상담의 결과를 가지고 분석을 한 내용이다.

 

치료의 과정

 X씨는 치료자와 마주 보고 앉았을 때 초조하고 불안해 했다. 분석 치료가 시작되기도 전에 그녀는 치료자에게 조금 전에 어머니에게 이야기를 하는 말을 들어보니 2시간 인터뷰 상담을 할 경우에는 2시간분의 치료 비용만 지불하고 상담은 끝나는 것이라고 했는데 자신도 그렇게 해 달라고 여러 번 사정을 했다. 치료자는 언니한데서 특별한 부탁을 받고 동생을 치료를 해 달라는 요청을 받고 6개월분의 48시간의 치료 비용을 이미 지불 받고 치료 계약을 했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가 없다고 단호하게 거부를 했다.

 정신분열증의 경우에는 환자가 스스로 치료를 받고 싶다고 부모님에게 이야기를 하거나 치료자에게 전화를 걸어오는 경우는 거의 없다. 정신분열증 환자는 대부분이 자신들은 문제가 없고 부모님이 자신에게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강압을 한다면서 심리 치료실에 오기를 거부하는 경우가 많다. 자녀가 심리 치료를 거부하고 심리 치료실에 오기를 원하지 않을 때 어떻게 하면 치료실에 오게할 수가 있느냐? 라고 하소연을 하는 부모님들이 많다. 치료자는 이러한 경우에는 환자에게 심리 치료를 받으러 간다고 하지 말고 그냥 부모님과 한번 "부모님이 잘 아는 대학의 교수님이 한 분이 있는데 한번 가서 심리적인 이야기를 들어보는 것이 좋겠으니 함께 가자" 라고 이야기를 해서 같이 오는 것이 좋겠다고 대답을 한다. 사전에 부모님과 계획적으로 짜고 환자를 치료실에 데리고 오면 부모님이 환자가 보는 앞에서 치료 비용을 지불하고 치료자에게 "선생님 우리 자녀를 잘 부탁합니다." 라고 이야기를 마치고 부모님은 치료실을 나가서 밖에서 분석 치료의 2시간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게 한다. 치료자는 이미 치료 비용이 6개월 분이 지불이 되었으니 치료자와 함께 환자 자신의 어려운 문제들을 함께 해결해 나가보자 라고 이야기를 건넨다. 만약에 환자가 치료를 거부하는 경우에는 치료 비용은 절대로 환불하지 않는다는 말도 더 붙인다. 이유는 한번 2시간의 분석 상담을 받아보고 나서 환자로 하여금 치료를 받겠는지를 결정을 하라고 하게 하면 다른 정신 장애자들의 경우 즉 불안증, 우울증, 성격장애 등의 경우에는 그러한 선택이 가능하지만 정신분열증 환자는 절대로 치료를 받으러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정신분열증 환자들이나 정신 장애들을 가진 사람들은 마음 속으로는 그들이 심리적인 문제점들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어느 정도 알고 있지만 외부적으로 절대로 자신이 문제점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강조를 하면서도 일단 치료가 시작되면 자신의 문제점을 한번 생각해 보기 시작하기 때문에 정신분열증의 경우에도 한번 치료실에 와서 치료 비용을 부모가 지불하는 것을 보게 되면 그리고 첫 인터뷰를 끝내게 되면 그 다음부터는 치료가 순조롭게 진행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X씨의 경우도 그렇게 해서 치료를 받게 하는데 성공하게 된 경우이다. 치료자는 이미 여기에 온 이상 마음 속의 고통들을 어떤 것이든지 간에 치료자에게 이야기를 해 보게 했다. "손님께서는 이곳에서 말을 논리적으로 하려고 하거나 예의를 따지거나 치료자에게 존경이나 예절에 신경을 쓰지 말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순서없이 어떤 것이 든지 이야기를 해 보세요"라는 치료자의 권유에 그녀는 자신의 이야기를 치료자에게 털어 놓기 시작을 했다.

 

환청으로 인해서 생긴 이벤트들

첫 번째 이벤트: X씨는 작년 10월 달에 환청 때문에 일어난 사건 때문에 xxx 정신병원에서 2개월간 입원을 하게 되었다고 했다. 어떤 환청을 가지게 되었느냐? 라는 치료자의 질문에 그녀는 그녀의 귀에 "당신이 고발을 하면 당신과 당신의 가족들을 가만 두지 않겠다"라는 협박, 위협의 말들이 들려서 두려웠다고 했다. 어떻게 해서 그런 위협을 받게 되었는지를 이야기를 해 보라는 치료자의 권유에 그녀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를 했다. 그녀가 우연히 인터넷 까페에 들어가서 어떤 수행 단체에 가입을 하게 되었다고 했다. 그 단체에서 모임이 있어서 한번 참가를 하게 되었는데 약 10여명의 회원들이 참가를 했다고 했다. 그 단계에 가서 그들의 설명을 들어보니 그들이 유체 이탈을 하고 사람이 공중 부양을 한다는 말과 그들의 단체에 와서 느낀 느낌들을 그들이 말하는 "기(氣) 회로도"라는 것을 만드는데 직접 참가를 해 보라고 해서 그들이 요구를 하는 설문지에 표시를 해서 그 결과를 이후에 인터넷 까페에 글을 올리게 되었는데 다른 회원들이 그 기(氣) 회로도에 올려진 X씨의 글을 보게 되었는데 그 글에서 X씨는 그 수행 단계의 진실성에 의문표(?)를 붙여 놓게 되었는데 그들이 그녀의 글을 읽어보고 그녀를 해꼬지를 할까 두려워했었다고 했다. 이런 두려움 속에서 어느 날 그녀의 귀에 "고발을 하면 너와 너의 가족들을 그냥 두지 않고 죽여 버리겠다"라는 협박의 말들이 귀에 들리게 된 것이다. 그녀는 두려움에 떨면서 그녀가 평소에 불교에서 늘 존경하던 대행 스님에게 이러한 사실을 알리고 도움을 받으려고 그 대행 스님이 거주하고 있는 사찰로 가기 위해서 지하철을 타고 가는데 각종 마구미들(불교에서 이 용어는 기독교에서 말하는  마귀들이라고 X씨가 더붙여주었음)이 나타나서 그녀를 가지 못하게 싸우는 것을 보고 이번에는 대행 스님이 그녀에게 나타나서 지하철 안에 있는 소화기를 안고 있으면 마구미들이 달려들지 못할 것이라는 목소리가 들려와서 지하철 안에 있는 소화기를 끌어 안게 되었고 이것을 본 지하철 손님들이 경찰에 연략해서 119 구급차가 달려 오고 그녀는 구급차에 실려서 xxx 정신병원에 입원을 하게 되었다고 했다.

두 번째 이벤트: X씨가 xxx 정신병원에 입원을 하고 2달이 지나가면서 병원에서 약물 복용으로 환청이 사라지자 퇴원을 하게 되었고 집에서 약물을 계속해서 복용하고 있던 올해 4월 말 쯤에 다시 두 번째로 환청으로 인한 이벤트가 발생하게 되었다고 했다. X씨는 그녀의 귀에 "xx 수행 단체를 고발하게 되면 너희 가족과 너를 가만 두지 않겠다"는 소리가 다시 들려 와서 이번에는 xxx 경찰서로 달려갔다고 했다. 경찰서에 가서 "나를 구해 주세요, 그들로부터 나를 보호해주세요." "그들이 나를 죽이려고 합니다." "당신들도 위험합니다. 그들이 당신들도 죽일 것입니다." 라고 호소를 하게 되었다. xx 수행 단체가 그녀와 그녀의 가족들을 죽이려고 위협을 한다고 고발을 하게 된 것이었다. 동시에 그녀의 머리 속에 대행 스님이 그녀에게 "내가 감독이고 너는 배우이니 우리 두 사람이 합세해서 나쁜 무리들을 처벌하고 사회를 정화하자"라고 하면서 그녀에게 말을 하면서 그 경찰서에 있는 경찰관들이 그 순간에는 원효, 의상 대사 등의 유명한 대사들이 환생한 불교 신자들로 보였다는 것이었다. 그녀는 그 순간에 그녀 자신이 대행 스님이 말하는 제자가 되어서 경찰관들의 머리를 때리면서 "너희들은 유명한 스님들의 환생한 불자들인데 너희들이 모두 좋은 것들을 독점해서 너희들만 나누어 가지면 되겠느냐?"라고 경찰관의 머리를 때리면서 꾸짓었다. 경찰서에서 그녀의 언니에게 전화를 걸 게 되었고 그녀의 언니가 xxx 경찰서로 와서 그녀를 데리고 이번에는 zzz 정신병원에 입원을 해서 약 2개월간 지내다가 치료자에게 전화를 걸어서 약물 치료와 심리치료를 함께 받고 싶다고 호소를 해서 어제 정신병원에서 퇴원을 하고 오늘 심리치료를 받기 위해서 치료자의 사무실에 오게 되었다고 했다.

 

성장 배경과 역사

X씨의 가족 관계: X씨의 아버지는 약 80대 중반의 나이로 10년 전에 중풍으로 지금은 집에 누워계시고 어머니는 약 80세로 집에서 살림을 하고 있으며 딸이 7명으로 큰 딸인 언니가 50대 중반인 독신으로 고등학교에서 교사로 근무하고 있고 둘째 언니는 결혼을 해서 가정 주부로 자녀들이 대학을 졸업하고 또 한 명은 대학에 재학 중이고 세 번째가 X씨이고 네 번째는 결혼을 해서 박사 학위를 가지고 있고 부부가 대학에서 강사로 있으며 다섯 번째는 의사로 개업의로 있는 독신이고 그리고 여섯 번째와 일곱 번째는 둘 다 공무원으로 결혼을 하지 않은 독신이라고 이야기를 했다. 지금 그녀는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큰 언니, X씨가 함께 살고 있다고 했다.

 어린 시절에 아버지가 인쇄업을 했기 때문에 어머니가 아버지 일을 도와주느라고 자녀들을 잘 돌보지 못했음을 이야기를 했다. 형제들이 많아서 서로 돌보아주지 않았느냐라는 치료자의 질문에 그런 것 같지 않다고 회고를 했다. X씨는 어린 시절에 둘째 언니와 많이 싸웠다고 회고를 했다. 아버지에게 세 번 크게 처벌을 받은 기억이 있다고 털어 놓았다. 그녀가 유치원 시절에 둘 째 언니와 싸우다가 아버지가 처벌로 그녀를 소파 위로 집어 던졌는데 다행히도 다치지는 않았다고 했다. 두 번째는 고등학교 시절에 둘 째 언니와 싸우다가 아버지에게 엎드려 뻗쳐를 하고 회초리로 맞았던 기억을 회상을 했다. 둘째 언니와 싸우게 되면 언제나 둘째 언니는 아버지로부터 처벌을 받지 않고 세 번째인 그녀가 처벌을 받았다고 회고를 했다.세 번째 이벤트는 그녀가 40대 초반에 아버지의 친구 분의 소개로 그녀보다 12살이나 많은 노총각과 결혼을 하라고 하는 것에 반대를 하다가 아버지에게 머리채를 잡혀서 벽에 쳐박힌 기억을 회상을 했다. 그 노총각은 고시 공부를 하다가 혼기를 놓친 사람으로 나이가 이미 50대로 돈이 많은 사람이었다고 했다. 그러나 나이 때문에 그녀가 거절 했었다고 했다. 그녀는 초, 중, 고등학교 시절에는 공부를 잘 했서 별다른 어려운 문제들은 없었다고 했다. 그녀가 xxx 사범 대학 영어 교육학과에 들어가서 2학년 때 그녀는 학교와 전공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1년 동안 재수를 해서 우리 나라에서 최고 명문 대학인 xxx 대학교 xxx 학과에 들어갔다고 했다. 대학 시절에 그녀는 동료들보다 나이가 3살이나 많아서 학과 동료들과 별로 어울리지 못했다고 했다. 치료자가 대학 시절에 남자 친구들을 사귀어 보았느냐는 질문에 남자 친구를 사귀지 못했다고 했다. 그녀는 대학 불교 동아리에 가입을 해서 약 3년 동안 활동을 했는데 그 때 불교 동아리 회장인 정치학과에 재학중인 한 살 많은 오빠를 짝사랑했으나 제대로 말도 한번 해 보지 못했다고 했다. 그녀가 가족들에게 그 회장 오빠를 짝 사랑한다고 말을 했을 때 가족들이 "짝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라고 말을 했다고 회고를 했다. 그 후에 그녀의 집 주변에서 자치를 하고 있던 4살 아래의 법대 학생과 이야기도 나누고 도서관 앞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이야기도 나누었던 것이 남학생들과 주고 받은 유일한 이성 관계였으나 X씨가 이야기를 하는 쪽이 아니고 주로 그 학생이 그의 여자 친구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이었으며 서로 친밀하게 사귀는 사이는 아니었다고 했다. 그 학생은 시골 출신으로 그녀에게 호감을 가지고 접근을 했으나 그녀는 별로 남자들을 사귈 마음이 없었다고 했다. 그녀가 졸업 후에 행정 고시에 2년간 매달릴 시점에 그 법대 학생이 졸업 후에 그녀에게 전화를 걸어 왔으나 그녀는 그 당시에 직업도 없었고 자존심 때문에 걸려온 전화를 받지 않았다고 했다.

 행정 고시에 매달려 2년을 보내다가 포기하고 그녀는 xxx 여성 신문사에 신문 기자가 아닌 사무원으로 들어가게 되었다고 했다. 그 회사에서 2년간 근무를 하면서 그녀는 그 회사에서 정식으로 여성 신문 기자 채용을 하게 되었을 때 그녀의 상사에게 이야기를 해서 그녀도 정식으로 여기자 시험을 치고 싶다고 이야기를 했을 때 승낙을 받았으나 이후에 그녀의 상사가 같은 직장에서 직원으로 있으면서 여 기자 채용 시험에 응시를 하는 것은 좀 어색하지 않느냐라는 말을 듣고 포기를 하고 그 신문사에게 나오고 말았다고 했다. 그녀는 그 여성 신문사에 근무를 할 때 그녀의 동료 직원이 그녀의 상사에게 핸드백을 들고 다니고 그녀에게 아부를 하고 아양을 뜨는 한 동료 여직원이 틀림없이 그녀의 상사에게 X씨를 여 기자 시험에 부적합한 인물로 그녀를 나쁘게 이야기해서 그 상사가 그녀에게 처음에는 여기자 채용 시험에 응시를 허락해 놓고 이후에 그녀가 응시하는 것이 보지 좋은 것이 아니라고 거부를 했을 것이라고 중간에서 그 동료가 방해 공작을 했을 것이라고 여러 번 강조를 했다.

 이후에 그녀는 경실련에 들어가서 약 2년 동안 봉사 활동을 하게 되었다고 했다. 경실련에 들어갈 때는 이력서나 학력 등을 받지 않고 그냥 일을 하고 싶은 분들은 함께 일을 하자는 권유에 그곳에 들어가서 일을 하게 되었으나 실제 봉급은 교통비 정도밖에 되지 않아서 실망스러웠다고 했다. 그녀는 당당하게 봉급을 받고 있을 하고 싶었으나 그러한 일자리를 찾을 수가 없었다고 했다. 경실련에 있으면서 단 한사람을 제외하고는 그 직장 동료들과는 별로 친하게 지내지 않았으나 몇몇 회원들과는 친하게 지냈다고 했다. 그 사람은 여성으로 그녀보다 7살이 많은 사람이었고 사교성이 있어서 그녀를 좋아하게 되었다고 했다. 그리고 회원으로 그녀보다 1살 많은 은행원 남자 분이 사회성도 있고 유머도 있어서 같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으나 결혼은 생각해 보지 않았다고 했다.

 경실련에서 2년 후에 나와서 그녀는 다시 xxx 재활원에서 1년 6개월 동안 일을 했다고 했다. 그곳은 고아원으로 초, 중, 고등학교에 다니는 부모가 없는 어린이들을 돌보아 주는 곳으로 어린이들을 컨트롤하기가 어렵고 또 그들이 그녀에게 반항을 하는 일이 잦아서 어려움이 많았다고 했다. 결국은 그곳에서 나오게 되었다고 했다. 그 때 그녀의 나이가 벌써 40대 초반기를 넘기고 있었다고 했다.

 이후에 그녀는 약 10년 동안 사법 고시에 매달리게 되었다고 회고를 했다. 처음 약 3년동안은 열심히 노력을 해서 평균 0.0079점으로 1차 시험에 낙방을 했다고 아쉬워했다. 일본어에서 점수를 많이 못 얻은 것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나 이후부터 사법 시험이 일본어가 빠지고 영어 토익 점수가 일정한 점수가 이상 되어야 응시 자격이 주어지는 바람에 영어 때문에 고전을 하게 되면서 약 7년의 세월 속에서 1차 시험에 응시도 하지 못하고 세월이 흘러갔다고 했다. 그녀가 2년전부터 사법 시험을 포기하고 공무원 9급과 7급 시험을 공부를 하면서 지금까지 지내왔다고 씁씁해 했다.

 그녀는 사법 시험 준비로 첫 3년간 몰두를 하고 있을 때 어머니가 작은 원룸을 하나 사 주는 바람에 가족들과 독립해서 집에서 나와서 혼자서 7년 동안 준비를 해 왔다고 했다. 처음에 나와서는 몇 년동안은 어머니가 생활 비용을 부담을 했 주었으나 이후부터는 생활비를 끊어 버리는 바람에 일자리를 찾다가 학교 급식소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고 했다. 학교 급식소는 하는 일이 너무 고되고 힘들어서 일을 마치고 집에 오면 파, 김치가 되는 바람에 공부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고 실토를 했다. 그녀는 학교 급식소에서 몇 개월 일을 하다가 우연히 어머니가 그녀의 집에 들렸다가 방에 걸려 있는 앞 치마에 쓰인 글자를 보고 그녀에게 물어보게 되어 그녀가 학교 급식소에서 일을 한다고 하자 어머니가 형제들에게 이야기를 해서 형제들이 월 50만원씩을 지원해 주다가 최근에는 월 70만원 정도로 지원을 받고 있다가 환청으로 정신병원에 두 번째 입원을 하고 난 이후부터는 어머니, 아버지와 큰 언니와 함께 가족들과 함께 살고 있다고 했다.

 지금까지 살아 오면서 결혼은 생각해 보지 않았느냐는 치료자의 질문에 그녀는 결혼은 직장을 구하고 나서 33세 쯤에 생각해 보겠다고 결심을 하고 몇 차례 중매로 선을 보았으나 같이 만난 상대와 몇 분 동안 이야기를 하지 못하고 상대에게 그냥 가라고 말을 해서 대화 관계를 제대로 가져본 적이 없었다. 그러자 33살이 넘어 가면서 이제는 중매도 제대로 들어오지 않고 세월이 흘러서 40대가 되자 그녀에게 관심을 가지는 사람도 없었다고 했다. 40대 초반기에 아버지의 친구의 아들로 사법 고시에 매달리다가 혼기를 놓치고 사업을 해서 돈을 많이 번 50대 초반의 남자에게 시집을 가라는 아버지의 강요에 나이 때문에 반대를 했다가 아버지에게 머리채를 잡히고 벽에 쳐박힌 사건을 회고를 했다. 지금 생각에 보니 그녀가 삶을 제대로 살지 못하고 바보 같이 살아온 것 같다고 쓸쓸하게 회고를 했다.

분석의 결과

 X씨는 어떻게 해서 위와 같은 환청을 가지게 되었을까? 하는 것을 6시간 동안에 모아진 자료들을 바탕으로 분석을 해 보고자 한다. X씨는 대인관계가 제대로 되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동료들과 관계도 친밀하지 못했다. 친밀관계와 대인관계에 어린 시절부터 문제를 가진 사람이라는 것이 분석되었다. 그녀는 초, 중, 고등학교 시절에는 별 문제가 없었으나 친밀한 친구들이 없었다. 그녀의 어려움들을 털어 놓고 이야기를 할 친밀한 친구가 거의 없었다. 대학 시절에 재수를 해서 우리나라에서 최고 명문 대학에 들어갈 수는 있었으나 대학 시절에도 동료들과 어울리지 못했다. 나이가 재수 때문에 3살이 많은 이유 때문에 동생과 같은 학과 동료들과 어울리지 못해다고 말을 하고 있지만 그녀는 근본적으로 친밀관계를 만들지 못하고 항상 외톨이로 대학 생활을 보냈다. 불교 동아리에서 정치학과 선배를 짝 사랑한 것이 그녀의 처음으로 이성 관계를 생각한 것이자 그것이 그녀의 마지막 이성 관계였다. 그녀는 여자는 직장이 있으야 남자들과 대등하게 결혼을 할 수 있다는 특이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부부는 맞벌이를 해야 하고 부인도 반드시 직장을 가져야 남편과 대등하게 관계를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사로 잡혀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올바른 직장을 가지려고 노력을 했으나 그녀가 졸업한 대학에 걸맞는 올바른 직장을 가질 수가 없었다고 강조를 했다. 그녀는 여자는 사회 생활에서 남자들에게 차별을 받고 있으며 사회가 불공평하다고 여러번 강조해서 이야기를 했다.

 그녀가 불교에 심취해서 대학 1학년때 대학 불교 동아리에 가입을 해서 3년 동안 활동을 했으나 그녀는 어느 특정한 사찰에 출입을 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녀는 비구니 여성 스님으로 이름이 난 대행 스님 이야기를 했다. 그 대행 스님은 수행을 많이 해서 이름이 난 여성 스님으로 책도 쓴 것을 X씨가 여러권 읽어보았다고 했다. 그리고 사법 고시를 준비하는 후반기 7년 동안에 많은 서적들도 읽어보았다고 했다. 대행 스님의 서적 중에서 어느 한 구절에 마음이 걸렸다고 했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하듯이---"라는 구절에서 여자 스님인 수행을 많이 한 대행 스님마져도 여성들과 남성들을 차별하는 말들을 하고 있다는 생각 때문에 그 다음부터는 그 대행 스님을 찾지 않았다고 했다. 이 전에는 그 대행 스님이 거주하고 있는 안양 근처에 사찰에 한번 들린 적이 있었다고 했다. 그러나 이후부터는 그 대행 스님에게 실망을 해고 다시는 찾지 않았지만 그녀는 혼자서 불교 서적을 읽거나 한 달에 한번 정도로 그녀가 거주하는 인근 사찰에 들려서 기도를 하거나 절을 둘러 보면서 조용하고 공기가 맑는 자연 속에서 몇 시간씩 지낸다고 했다. 대행 스님이 쓴 책의 글귀 때문에 대행 스님도 역시 여성을 차별하는 사람이었구나라는 그녀의 실망스런 생각과 그리고 또 그녀가 환청에서 들리는 목소리 속에서 경찰관을 보고 머리를 때리면서 "너희는 과거 이름난 대사들이 환생한 불자로써 너희들만 모든 것을 독차지 하고 너희들만 돌아가면서 독식을 해서 되겠느냐?"라는 말과 "너희들만 독식을 한다"고 말을 하면서 "사회 정화" "사회 정의"의 실천을 하려고 한 것을 보면 그녀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그녀가 제대로 된 일자리를 얻을 수 없었던 것은 사회의 여성 차별 때문에 그녀는 그녀가 원하는 일자리를 제대로 가질 수가 없었다고 모든 문제들을 사회의 여성차별주의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는 점이었다.

 우리 사회에 여성들이 제대로 된 일자리를 얻기가 어렵다는 것은 인정을 한다고 해도 그것 때문에 그녀가 일자리를 얻지 못한 것은 아니고 그녀의 대인관계, 친밀관계 때문에 사람들과 친밀한 관계를 할 수 없는 문제가 그녀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의 여동생들은 다 공무원, 의사로 직업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보면서도 그녀의 가족 구성원들 중에서도 유독 그녀만이 우리나라의 최고 대학을 나왔다는 그 사실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여동생들은 다 제대로 된 일자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그녀는 그녀가 제대로 된 일자리를 가질 수 없는 것은 여성에 대한 차별주의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는 점이다. 치료자는 그녀에게 그렇게 좋은 학벌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우리나라 대 기업에 채용에 응시를 해 보지 않았느냐라는 질문에 그녀는 삼성 회사에 응시를 해서 1차 시험에 합격을 했으나 2차 시험에서 떨어졌다고 털어 놓았다. 그녀는 면접에서 낙제를 한 것이었다. 요즘은 대기업의 입사 시험에서 성적 순으로 인재를 뽑는 것이 아니고 자기 표현과 자신감과 대인관계와 팀웍들을 중시한다는 것을 그녀는 모르고 있었다.

 그녀는 평생 동안 제대로 된 일자리를 얻으려고 발버둥 치다가 세월을 흘러보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녀는 그녀의 생각이 유연하지 못하고 잘못된 생각에 사로잡혀 편집증적으로 한 생각에만 골몰해 있었다. 일자리를 행정 고시, 사법 고시 등에 국한 시켜서 이것에 대학 졸업후 처음에 2년을 행정 고시로 보내고 40대 초반부터 10년 간을 사법 고시에 흘러보낸 것이 이것을 증명해 준다. 다른 사람들과 생각을 나누고 감정을 교감해서 정보를 얻고 자신의 지식을 통합하는 능력에 결함이 있었다. 사람들은 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하면서 의사 소통으로 서로의 정보를 나눈다. 이러한 커뮤니케이션을 통해서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경험을 공유하고 내가 잘못된 생각을 하거나 잘못 알고 있는 것을 피드백을 받아서 내 생각의 잘못된 부분을 고쳐나가는 것을 통해서 내 자아를 통합해 나간다. 이것이 우리의 일상의 생활이다. X씨는 이러한 관계에 결함이 있었다. 그녀는 약 10년 동안 사법 시험 공부를 준비를 해 왔으나 겨우 1차 시험에 근소한 차로 한번 낙방을 한 적이 있었다. 나머지는 1차 시험에 통과를 한 적이 없었다. 사법 시험은 1차는 대부분이 좀 공부를 한 준비생들이 다 통과를 하는데 더 어려운 시험은 2차 시험으로 주관식 시험이 가장 어렵다는 것을 그녀가 알면서도 일자리를 구할 수 없다는 무능력함으로부터 자아를 보호하기 위해서 자기 최면으로 사법 시험에 10년 동안 허용 세월을 한 것이었다.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면 빨리 뒤로 물러서서 다시 재 정비를 하고 자신의 결함을 살펴보고 어디에 맹점이 있는가를 알고 대비를 해 나가야 하는데 이런 문제들에 결함 때문에 세월만 10년을 허송 세월을 해 버린 것이었다.

 이제 그녀는 사회가 두렵고 겁이 나고 사회 생활이 공포로 다가 온 것이었다. 가족 구성원들이 생활 비용을 지원해준 지가 4년-5년이 넘어가고 일자리를 제대로 된 그녀의 학력에 걸맞는 일자리를 찾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그녀는 그녀를 차별 대우를 해서 그녀에게 일자리를 주지 않는 사회의 부조리를 고발하고 싶었다. 그녀의 무의식 속에는 부조리한 불평등한 사회에 항의를 하고 사회에 부조리가 근절되면 그녀에게 일자리가 주어질 것이라고 잘못된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그녀의 무의식의 마음 속에 사회에 대한 두려움, 공포가 쌓이면서 그것이 그녀의 마음 속에 사이비 수행 단체가 그녀를 위협하고 그녀를 파괴하려고 한다는 것으로 반사되어 되돌아온 것이다. 즉 그 사이비 수행 단체는 바로 불공평한 사회를 상징한다. 이것이 바로 환청으로 나타난 것이다. 환청 속에 숨겨진 은유는 그녀가 사회에 적대감정을 가지고 사회를 정화 시켜야 하겠다는 마음 속의 결심 때문에 그것이 반사되어 그녀의 마음 속에 비치면서 그러한 적대 감정이 바로 그녀의 자아를 공격을 하고 있는 것이다. 가장 신성한 단체인 종교계에서 마져도 불공평하다. 즉 대행 스님에게 실망, 불교 내에서도 여성 차별과 여성들에게 일자리 찾기를 도와주지 않고 불자들만이 서로서로 돌아가면서 좋은 것을 독식하고 있다는 그녀의 생각이 환청 속에 나타나 있다. 다른 사람들은 잘도 일자리를 구하고 사회생활을 해 나가는데 우리나라에서 최고 대학을 나온 그녀는 아무리 노력을 해도 졸업장에 걸맞는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에서 환생한 유명한 불자들이 그들만이 혼자서 일자리를 독식한다는 환청으로 상징적으로 나타난 것이었다.

 또한 사회에 대한 두려움 속에는 그녀의 가족 구성원에 대한 미안함과 두려움, 불안스러움, 죄스러움이 함께 섞여 있다는 점이다. 그녀는 가족 구성원들에 대해서 특히 80대의 어머니에 대해서 염려하고 걱정이 대단했다. 치료자의 사무실에 X씨와 함께 온 어머니가 치료실 밖에서 2시간동안에 기다리게 한 것에 대해서 그녀는 이야기 도중에 많은 걱정들을 했다. 혹시 길을 잃어 버리지 않을까 하고 걱정을 하다가 치료 시간이 끝나는 시점에 어머니가 치료실 밖에 계시지 않는 것을 알고 놀래서 불안에 떨었다. 얼마 후에 어머니가 나타나서 2시간 동안에 주변을 구경 삼아서 둘러 보았다는말에 안도하면서 집으로 돌아갔다. 어머니는 매일 같이 X씨를 대동하고  같이 왔다. 이유는 또 다시 X씨가 불미스러운 행동을 하지 않을까 하고 두려워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X씨가 강조를 했다. 그녀는 4년-5년 동안 형제들에게서 생활 비용을 지원받고 있어서 그들에게 미안하고 빨리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서 죄스러움과 일자리를 구할 수 없을 것이라는 것, 그리고 혼자사 살아갈 수 없은 것이라는 것 등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스러움이 그녀의 마음 속에 깊숙이 자리잡고 있는 줄을 그녀는 모르고 있었다.

 

치료에 방향

 X씨의 치료는 앞으로 그녀가 사회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잘못된 생각들을 스스로 알 게 하고 이것을 수정해 나가는데 초점이 맞추어질 것이다. 사회의 불평등은 존재하지만 그러나 근본적인 문제점은 X씨의 잘못된 생각 즉 대인관계가 잘 안되고 친밀관계가 안되고 특히 이성 관계는 아예 되지 않고 있음을 그녀가 알고 이것을 바꾸어 나가야 한다는 점이다. 사회에 대한 적대 감정이 사회에 대한 공포심을 유발하고 있음을 그녀가 알 게 한다. 그녀의 심층에 쌓인 사회에 대한 분노와 적대 감정을 것을 말로써 표현을 하게 만들어주어야 한다. 그녀로 하여금 그녀의 내면을 들여다 보게 해서 그녀의 내면 속에 쌓여있는 사회생활을 해 나가는데 두려움, 공포, 불안들을 쏟아내게 해야 한다. 그녀의 사회에 대한 불평 불만들을 토해내게 해서 마음의 안정을 얻게 되면 대인관계를 하는 방법, 대인관계에서 친밀감을 쌓아나가는 방법들을 다시 배우게 해야 한다. 그녀는 직장이라면 무조건 행정 고시, 사법 고시, 7급, 9급 공무원만 있는 것이 아니고 그녀의 주변에서 찾아보면 혼자서 개인적으로 할 수 있는 일자리들이 있다는 것을 그녀가 알 게 되어 사회생활에서 자신감을 가지고 삶을 즐겁게 살 수 있게 되어야 그녀의 정신분열증에서 빠져 나올 수가 있을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는 대는 시간이 많이 걸리고 자신의 자아와 앞으로 많은 투쟁을 해야 함을 알아야 할 것이다. 희망적인 것은 다행히도 X씨는 환청으로 정신분열증의 진단을 받은지가 얼마되지 않았다는 점 즉 정신분열증을 가지게 된 시점이 불과 1년 미만이라는 점치료자와 이야기를 하는 데는 큰 어려움이 없었다는 점 그리고 정신병원에서 입원해 있으면서 처음에는 그녀의 환청이 정말로 다른 사람들이 그녀에게 말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정신병원에서 환청은 그녀의 귀에만 들리는 것으로 실제 외부 대상이 그녀에게 말을 하는 것이 아니고 그녀의 마음 속에서 들리는 현상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는 점이다. 대화로 그녀의 생각을 표현을 하는데는 큰 어려움이 별로 없기 때문에 시간이 다소 걸리드라고 그녀가 그녀의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지만 강하다면 앞으로 좋은 결과를 얻을 것으로 기대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