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상: 57세의 부인 D씨

증세: D씨는 2000년도에 환청으로 6개월 동안 xxx 신경 정신과에서 약물 치료를 받았고 7년 후 2007년에 환청이 다시 재발 xxx 종합 병원에서 1년 동안 약물 치료를 받고 호전되었으나 2008년에 다시 불면증으로 1.5개월 동안 xxx 종합 병원에 입원 후에 몇 개월 동안 안정되었으나 다시 한번 불면증으로 응급실에 실려간 적이 있음. 이후 지금까지 3년 동안 정신분열증, 우울증, 불안증, 불면증 약물을 계속 복용해 오고 있으나 최근에 불면증이 심해져서 불면증 약물 투여량을 증가시켜 복용하고 있으나 별로 효과가 없다고 했음

진단: 우울증, 불안증, 불면증, 정신분열증

연결: D씨는 2년전에 결혼해서 분가해 직장 생활을 하고 있던 그녀의 아들이 불안증과 대인관계 때문에 치료자 한데서 6개월 동안 정신분석 심리치료를 받았던 사람으로 그 때 그가 그의 어머니가 정신분열증으로 고통을 받고 있다면서 그의 어머니를 정신분석 심리치료를 받게 하려고 다짐을 했으나 사정이 여의치 않아서 지금까지 미루어 오다가 최근에 약물 치료에 크게 실망한 어머니를 설득해서 어머니가 스스로 정신분석 심리치료를 받으러 오게 되었음

치료 결과: 아래의 분석은 D부인의 제 8회(1회기 당 3시간)의 치료 회기 즉  24시간의 치료 시간을 통과해서 지나가면서 그 동안의 치료 과정과 결과를 요약한 것이다. D부인은 이제 하루 중에 점심 시간 이후에 약  5분-10분 정도 과거의 생각들이 침투를 해 온다고 했다. 그 이외에는 침투 사고와 불면증은 사라졌고 우울증도 거의 사라졌다고 기뻐했다. 그녀는 이웃에 살고 있는 친 손자들을 돌보아주면서 잘 지내고 있다고 밝은 표정이었다.

 

치료의 과정

 D부인은 얼굴 표정이 많이 밝아진 모습이었다. 그녀는 지난 주일을 어떻게 보냈느냐?는 치료자의 치료 시작 때 질문에 "요즘은 손자들을 돌보아 주면서 잘 지내고 있습니다"라고 대답을 했다. 치료자가 치료자에게 치료를 받으러 처음에 왔을 때 과거에 상처 이벤트들 때문에 생각들에 휘말려서 머리 속이 복잡해서 잠이 잘 오지 않는다고 불평을 했는데 지금은 어떻합니까? 아직도 침투 사고들 때문에 끝임없는 생각들 속에 빨려 들어가느냐?고 물었을 때 그녀는 지금은 그렇지 않고 조용해졌다고 기뻐했다. 하루 중에 언제 즉 아침, 점심, 저녁 때 어느 정도 그러한 침투 생각들이 침범해서 머리 속을 혼란하게 만들어 놓는가요? 라는 질문에 그녀는 지금은 점심 직후 약 5분-10분 정도 그러한 생각에 빠져드지만 곧 사라지고 마음이 안정되고 조용해져서 지금은 마음이 편안하다고 했다.

 치료자는 과거의 상처 갈등들이 경험의 골격 속에 잘 정리되어 조직화 되지 못하고 따로 분리되어 흩어져 있어서 즉 정신분열은 과거의 상처 경험들이 자아의 뼈대 속에 통합되지 못하고 연결이 끊어져서 따로 제멋대로 튀어 나오는 것이 환청과 환각이라는 것을 설명하면서 그 상처들을 계속해서 다루면서 이제는 그 상처를 직면해서 두려워하지 않고 마스터할 수 있게 되면 그 상처들이 자아의 골격 속에 연결이 되고 정리가 되어 통합되어져서 침투 사고로 등장하지 않게 된다는 것을 설명하면서 D부인에게 과거의 상처 이야기로 다시 돌아가 보자고 종용을 했다. 마음 속에 자주 떠 오르는 상처들을 계속해서 이야기를 해 보게 했다.

결혼 직전에 사귀던 남자들과 관계: D부인은 지금의 남편과 결혼을 하기 전에 몇몇 남자들과 선을 보거나 사귀던 사람들이 있었다고 털어 놓았다. 첫 번째가 군인 장교였고, 두 번째가 포항 제철소에 다니난 사람이었고 세 번째가 초등학교 선생님으로 몇몇 남자들이 D부인과 결혼을 할 뻔 한 사람들이었다.

 군 장교는 D부인이 xxx 여상을 졸업하고(그녀는 대학에 진학은 꿈도 꿀 수가 없었다) 집 근처에 있는 목재소에 경리로 취직을 해서 3년 동안 근무를 했다. 그 시절 그녀는 목제소 인근에 사는 한 군인을 알 게 되었고 서로 1년 동안 편지를 주고 받으면서 몇 번의 데이트도 가졌다. 물론 부모님 모르게 만나서 식사도 하고 같이 영화관에 가서 외국 영화를 보았다 그러나 그 영화 이름은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다. 이후에 두 번째 환청이 발발 했을 때 그녀의 환청이 "그 군인이 너 때문에 자살을 했다"고 그녀에게 책임을 지라고 말을 했다. 그러나 실제로 그 군인이 자살을 했는지를 모르겠다고 했다. 그리고 환청으로 들리는 그 영화의 주제곡을 부르면서 몽유병 환자처럼 밖으로 나가는 것을 가족들이 말려서 데리고 들어왔다고 했다. 그와 사귀던 그 당시에 그 군 장교가 직접 집으로 어머니를 찾아와서 D부인과 결혼을 시켜 달라고 간청을 했다. 그는 지금 당장 결혼은 어려우니 1년만 기다려 주면 결혼을 하겠다고 애원을 했으나 어머니는 한마디로 거절했고 양 아버지는 펄쩍 뛰면서 "연애하면 칼 맞아 죽은 수가 있다"면서 반대를 했다. D부인은 어머니, 아버지에게 그 군인을 사랑한다는 말을 한마디도 못했고 그 군인은 그녀 곁에서 떠나갔다.

 두 번째 남자는 그녀가 경리로 있는 그 목제소의 사장의 동생 친구 분으로 자주 목제소에 놀러온 젊은이로 포항제철소에 다니는 사람으로 그가 그녀를 좋아했다고 했다. 집으로 어머니를 만나러 온 것을 아버지가 알고 그 미친놈이--운운하면서 결사 반대를 했고 그 젊은이와 관계는 그 이후로 단절되었다. 그 남자가 싫지는 않았지만 D부인은 한번도 부모님에게 그 남자가 마음에 드니 계속해서 사귀어 보냈다고 말을 하지 못했다.

 세 번째 남자는 그녀의 막내 동생이 다니는 초등학교 선생님으로 중매를 통해서 학교에서 서로 인사를 주고 받았다고 했다. 그 중매 장이의 여동생이 그 초등학교 선생님의 친구되는 선생님과 결혼을 했고 중매 장이의 여동생의 남편의 친구되는 초등학교 선생님을 소개를 받았던 것이었다. 그녀는 그 선생님이 마음에 들었고 서로 몇 마디 주고 받으면서 서로 좋아하는 것을 확인을 했다고 했다. 그러나 그 중매 장이가 그 선생님이 D부인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말을 전해 듣고 그 선생님을 포기를 했다고 했다. 이후에 그 중매장이가 거짓말로 둘을 떼어놓기 위해서 농간을 부렸다고 실토를 했다고 털어 놓았다고 했다. 그 중매 장이는 D부인이 그 교사와 결혼을 하게 되면 혼수를 많이 해 가지고 가면 그녀의 여동생과 비교가 되고 친구 교사와 결혼을 한 그녀의 여동생에게 미안하다는 생각에서 결혼을 하지 못하게 방해를 했다고 털어 놓아서 그 중매 장이에게 그러면 처음부터 소개를 해 주지 말아야지 하면서 분노했다.

 세 명의 남자들은 D부인에게 싫지 않는 결혼 후보자였고 그 중에서도 가장 마음에 들었던 사람은 누구인가?라는 치료자의 물음에 D부인은 초등학교 교사라고 힘주어 말을 했다. 안정된 직장을 가진 사람으로 외모, 인품이 세 사람 중에 가장 좋았다고 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그녀의 여동생(바로 밑의 배다른 여동생)과 관계가 숨이 있음을 분석해 낼 수 있었다.

 그녀의 배다른 바로 밑의 여동생은 4년째 대학을 졸업하고 중학교 수학교사와 사귀게 되었고 그 수학 교사는 홀 어머니 밑에서 자란 머리가 좋은 사람으로 돈이 없는 가난한 사람이었고 여동생이 그와 결혼을 하기 위해서 그녀의 엄마에게 그 사람과 결혼을 하려면 아파트를 한채 사가지고 가야 한다면서 떼를 쓰는 바람에 어머니는 D부인이 운영하던 목장을 팔았고 그 목장에서 결국은 D부인이 쫓겨난 사건과 연결되어 있었다. 여동생은 연애 결혼을 했고 결혼 때 혼수로 아파트를 한채 장만해서 시집을 갔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두 번째 여동생 역시 연애 결혼을 했다고 털어 놓으면서 D부인이 중학교 고등학교 그리고 직장 생활을 할 때 양아버지는 여자는 절대로 연애를 해서는 안 된다(연여하면 칼 맞아 죽는다)고 엄포를 놓았고 D부인은 일과가 끝나면 언제나 집으로 직행을 했다고 했다. 그런데 여동생들은 둘 다 연애를 했는데도 양아버지는 묵인을 했다고 분개했다.

현재 남편과 결혼: D부인은 부모님이 모든 것을 다 알아서 해 주실 것이다 라고 믿었고 위의 남자들은 싫지는 않았지만 모두 떠나 보냈다고 했다. 남편의 누나(그 당시에 결혼해서 부모님 동네에 살고 있었다)가 소개를 해서 중매인을 통해서 D부인의 어머니에게 혼담을 요청했고 어머니는 D부인에게 선을 보라고 종용을 했다. 선을 보는 날은 중매인, 시누이가되는 누나, 현재의 남편이 방 안에서 기다리고 있고 D부인과 어머니가 그 방으로 들어갔다고 했다. 모두 5명이 모여 앉아 있고 남편되는 사람이 "아가씨는 나와 결혼을 할 사람이 아닙니다"라고 말을 끄집어 냈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싫지는 않았다고 했다. 남편되는 사람이 D부인을 존중해서 치겨 세우는 말에 그녀 자신을 존중해 주는 줄로 인식을 했다. 그 말이 전부였다. D부인은 결혼할 상대에게 한마디도 물어보지 못했다고 했다. 학력, 직업 등에 대해서 당연히 부모님이 알아서 해 줄 것이라고 믿었다고 했다. 그녀가 고등학교를 졸업을 했으니 상대자도 적어도 고등학교를 나왔을 것이라고 믿었다고 했다. 이후에 한 달 후에 결혼을 했다. 첫날 밤에 신랑이 대뜸 하는 소리가 "아가씨 같이 공부를 많이 한 여성들도 술집에 많더라"라고 했다. 배의 사무장으로 일하고 있던 남편이 선장의 권유에 사창가에 갔던 이야기를 첫날 밤에 신부를 옆에 두고 하는 말에 기절초풍을 했다고 털어 놓았다. 남편이 천박하고 교양이 없고 무식하다는 인상을 가졌고 이 인상들은 이후에 결혼 후에 1년 정도 시간이 지나가면서 남편의 초등학교 졸업에 직장도 변변히 않는 교양이 없는 사람임을 알 게 되었고 이후부터 남편의 불신하게 되었다고 털어 놓았다.

 D부인은 결혼 후보자로 등장한 4명의 남자들 중에서 하필 제일 수준이 낮은 사람이 남편이 된 것에 대해서 부모님 특히 어머니에게 배신감을 느낀다고 털어 놓았다. 그녀는 어머니가 모든 것을 알아서 해 주실 것이라고 믿었고 결혼 상대자에게 물어 보고 싶었던 것을 물어보지 않았다고 했다.

어머니에게 느낀 배신감과 분노: D부인은 초등학교 4학년 때 양부가 사는 어머니의 집으로 들어갔고 그 때부터 그녀의 자아는 성장을 멈추었다는 것을 지적했을 때 그녀는 치료자이 분석에 100% 동의를 한다고 했다. 치료자가 그녀에게 그녀의 삶에서 가장 행복했던 때가 언제인가?라고 물었을 때 그녀는 서슴치 않고 외할머니와 함께 산 7년이었다고 대답을 했다. 그 시절에는 외할머니에게 하고 싶은 말들을 마음대로 할 수 있었고 외할머니가 술에 취했을 때 외할머니를 보살피고 보호자 역할을 했다. 이후에 그녀는 양부의 집으로 들어갔고 그 시점에서 어머니는 늘 D부인에게 "나는 너 때문에 내 삶이 희생이 되었다. 네가 없었다면 나는 팔자를 고쳤을 것이다." 너 때문에 나는 혹이 달려서 재혼에서 좋은 자리를 놓쳤다. 너를 위해서 내가 희생을 하고 있다."라고 늘 입버릇처럼 이야기를 했다. D부인은 엄마의 눈치를 보게 되었고 특히 엄마가 D부인 때문에 양아버지로부터 코너로 몰리거나 체면이 손상되는 것을 두려워했다고 했다. 그래서 그녀는 엄마를 위해서 그녀 자신을 희생, 헌신하겠다고 마음 속에 다짐을 했다고 했다. 그녀는 초등학교에 전학을 가면서 가장 큰 문제가 통신표에 등장하는 보호자인 아버지와 그녀의 성이 다르다는 것을 가슴아파 했으나 어머니, 양부에게 호적에 성을 바꾸어 달라고 이야기를 하지 못했다고 했다.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에도 통신표에 보호자와 성이 다른 것 때문에 친한 친구들을 사귈 수가 없었다고 눈물 지었다. 부모님 특히 어머니에게 누가 될까 봐서 호적에 성을 변경해 달라고 말을 할 수 없었다고 했다. 그녀는 동생들을 업고 키웠다고 했다. 어머니의 심부름을 도맡아서 했다고 했다. 양부의 수입이 거의 없어서 어머니는 빚을 내어 집을 지어서 파는 일을 했기 때문에 늘 돈을 빌렸고 그 이자들을 D부인이 심부름을 맡아서 했다고 털어 놓았다. 그녀는 엄마의 이자 심부름을 하면서도 왜 내가 이런 심부름을 도맡아서 해야 하느냐 라고 여러번 반문을 했지만 정작 어머니에게 그런 불평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고 했다.

 D부인은 중, 고등학교 시절에 성적은 우수했으나 대학은 꿈도 꿀 수가 없었다고 했다. 대학에 보내달라고 이야기도 한 적이 없었다. 그녀는 스스로 여상을 택했고 졸업 후에 목제소에 경리로 취직을 했다. 그리고 3년 동안 일하면서 월급 봉투 채로 양 아버지에게 갖다 드렸으나 양부는 한번도 그녀에게 용돈을 준 적이 없었다고 회고를 했다 그녀의 직장은 집 인근에 있었기 때문에 교통비는 필요가 없었지만 옷이나 화장품 등을 위한 용돈은 필요했다. 보다 못해서 인지 어머니가 "망할 인간! 용돈 한푼 안주지 네가 안스럽다"면서 어머니가 몇 푼의 용돈을 준 적이 있었다고 했다. 그녀는 화장이나 옷차림에 신경을 쓰지 않았고 자연스러운 모습 그대로가 좋았다고 했다. 그녀가 결혼 후에 그녀의 손자, 손녀들이 방문을 해도 양부는 친 손자, 손녀들에게는 용돈을 주었으나 D부인의 손자, 소녀들에게는 용돈을 주는 것을 보지 못했다고 했다. 양부는 D부인에게 외출 금지, 연애 금지를 외쳤으나 친딸 두명은 모두 연애를 했고 늦게 집에 들어와서 한번도 야단을 치는 법이 없었다고 회고를 했다. 포항 제철에 다닌다는 남자가 집에 찾아 왔을 때 양부는 그 사람을 한번 보지도 않았지만 "미친놈, 거지 같은 놈, 되먹지 않는 놈"이라고 쌍욕을 했던 것을 기억을 하고 있었다.

 부모님의 말씀을 잘 들어야 착한 딸이라고 교육 즉 세뇌를 받아온 부인은 결국 결혼 시에도 남편될 사람에게 물어 보고 싶은 말들을 한마디도 못했다. 그리고 시집 식구들에게도 한번도 그들의 분노, 공격에 대답을 한번도 한 적이 없었다.

시갓댁 식구들과의 갈등: D부인은 결혼 후에 남편의 월급을 쪼개서 조그만 땅을 사두었다. 그리고 시 아버지(남편의 친 아버지)가 자신이 죽고 나면 계모 밑에서 자란 아들이 집과 약간의 논, 밭을 유산으로 물러 받을 기회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해서 인지 조상 대대로 내려 오는 종답으로 산골짜기에 있는 논(토지) 2 마지기(개)를 남편이 팔아서 쓰고 대신에 조상들의 제사를 책임지도록 허락해 주었고 이후에 남편이 실직 후에 목축을 하게 되면서 젖소들을 키워 놓으면 엄마가 말도 없이 팔아서 바로 밑의 여동생의 대학 등록금으로 써는 바람에 그녀는 젖소가 아직 작아서 젖을 많이 짜지 못해서 생활비가 부족하게 되자 그 논을 매매해서 생활비로 쓰게 되자 계모는 자신의 친자식들 2명과 며느리를 대동하고 할머니 제사를 준비하고 있는 D부인의 집에 침입해서 제사 상을 뒤엎고 왜 조상들의 제사 용으로 전답을 마음대로 팔아먹었느냐고 소동을 벌렸다고 회고를 했다. 시어머니는 D부인에게 막말과 저속한 욕설들을 퍼부었다고 했다. "xxx 년아 네가 우리집에 시집을 오면서 우리 집이 망했다"고 하는 통에 서러워서 "어머니 내가 이집에 시집을 와서 아들 낳고 딸 낳고 이렇게 살아 왔는데 우리집이 망했다는데 증거를 대 보세요"라고 말을 하고 싶었으나 꾹 참고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시 어머니는 항상 남편이 고향이 사 놓은 조그만 땅에 군침을 삼켰다고 했다. 6명의 이복 동생들을 다 뒤바라지를 하지 않는다고 늘 불평불만이었다고 했다. 바로 밑에 시동생이 결혼을 할 때 남편의 월급이 그 시점에서 10만원이었을 때 결혼 부조금으로 20만원을 현금으로 지불했고 그 밑에 시동생, 시누이가 결혼을 할 때 D부인이 살림살이 도구들을 하니씩 장만해 주어서 부인 D는 할 일을 다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바로 밑에 시누이가 공장에 다니면서 그 회사에 상사와 연애를 했고 어느날 실종 되는 바람에 남편과 수소문을 해 보니 시누이가 그 회사 상사의 집에 들어가서 살고 있었고 그 상사의 부인은 별거중이고 이미 시누이는 임신 7개월이었다고 했다. 그 상사에게 따지면서 물었더니 부인이 자식이 없어서 시누이가 자식을 낳아주겠다고 약속을 했다면서 출산을 해달라고 애걸을 했다. 시누이가 씨받이로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을 깨닫고 D부인이 그 시누이를 데리고 그 집에서 나와서 병원에 데리고 가서 유산을 시키고 D부인 집에서 몸조리를 시키고 돌보아 주었는데도 시 어머니는 아량곳하지 않았다고 했다. 이후에 시 어머니는 아들 2명과 의논을 해서 고향에 집, 논밭을 팔아서 부인이 살고 있는 인근 도시로 이사를 왔고 그 시점에서 할머니 제사 일에 D부인의 집에 찾아와서 난동을 부렸다고 회고를 했다. 이후에 시 어머니의 지시로 D부인의 자녀들이 결혼을 할 때 이복 형제들이 한명도 참석하지 않았고 이복 동생들이 출가 후에 시어머니는 자녀들과 갈등 때문에 음독 자살을 하고 말았다고 회고를 했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어린 시절에 한번 형성된 자아는 어른이 되어서도 별로 변함이 없다는 것을 D부인의 자아가 그것을 증명해주고 있지 않은가?

 지난 주일에 D부인은 양 아버지의 생일로 하루 먼저 생일 케이크와 선물을 사 들고 양부의 집을 찾았다고 했다. 직장 때문에 바쁜 아들 내와를 대동하고 아들의 승용차를 얻어 타고 양부의 생일 하루 전날에 찾아보게 된 것이었다. 양부는 생일 선물과 케이크를 받고도 한번도 고맙다는 말을 한 적이 없었다고 했다. 이번에도 양부는 마찬가지였다고 서운해 했다. 이복 동생들이 양부의 생일을 챙기지 않았을 때 D부인이 제일 먼저 양부의 생일을 챙겨드렸고 그 이후에 이복 동생들도 아버지의 생일을 챙기기 시작했다고 회고를 했다. 치료자가 그녀에게 이제는 양부의 섭섭함을 알았으니 내년에도 양부의 생일을 챙겨드릴 것인가?라는 질문에 그녀는 그녀의 성격은 변함이 없을 것이라고 했다.

 치료자는 D부인에게 분노를 말로 표현을 하는 것은 부모님을 원수로 만들기 위한 것이 아니고 부모님을 위한 것도 아니고 내 자신의 자아를 키우고 성장시키는 것임을 명심시켰다. 이후에 그녀의 자아가 자라게 되어 미성숙한 자아의 부분이 성숙하게 되면 오히려 부모님과 관계는 더 좋아질 것이라고 확신을 시켰다. 그 증서로써 바로 밑에 두 명의 배 다른 여동생은 부모님에게 좋은 소리, 쓴소리 등 하고 싶은 말을 다하고 살아서 지금 그녀처럼 정신장애가 없지 않는가! 그리고 부모님과의 관계까 껄끄럽지 않고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지 않는가? 하는 것을 보도록 했다.

 어린 시절에 골격이 잡힌 자아는 성장 후에 어른이 되어서도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D부인이 보여주고 있었다. 그녀는 양부의 가정에서 자라면서 엄마로부터 부모님에게 복종하라고 세뇌를 받았다. D부인은 한번도 자신의 주장, 자신의 욕구, 자신을 챙기지 않았고 어머니의 말씀대로 부모님이 모든 것을 알아서 다 해 줄 것이라고 믿었다. 이후에 결혼을 해서 시가집에서 시 어머니나 시동생들 한데서도 수모를 당하면서도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는 것이 분석되어지면서 어린 시절에 자신의 목소리를 잃어 버린 D부인이 어른이 되어서도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것은 11살 때 양부의 집에 들어가면서 D부인의 감정 표현, 자기 주장의 자아는 성장을 멈추어 버렸고 더 이상 자라나지 않았다는 치료자의 분석에 그녀는 100% 동의를 했다.

 그녀가 통분하고 원통해 하는 것은 시가집의 구성원으로부터 받은 수모, 모욕 보다는 어머니가 그녀에게 세뇌 시킨 것에 더 울분을 토했다. 엄마는 말끗마다 D부인을 위해서 엄마의 삶을 희생했다고 말을 했고 D부인도 그렇게 철석같이 믿었는데 어른이 되어서 보니 어머니는 철처히 D부인을 이용하고 노예처럼 부려먹었다는 것을 알 게 되었을 때 그녀는 심장이 터질 것 같다고 하소연을 했다. 이런 그녀의 성격이 결혼 후에도 시갓댁 식구들과의 관계에서 재연된다는 것을 알 게 되면서 그 싹을 제공한 어머니에게 분노가 하늘을 찔렀다.  

 그렇게 살아온 그녀의 삶이 결국은 정신분열증이라는 병명으로 낙인이 찍이고 11년동안 그 병에 시달리고 있느 그녀 자신의 모습에 그녀는 그 근본 원인이 그녀의 엄마의 거짓 말에 배신감에 있다는 것을 이제는 확신하는 것 같았다.

 차라리 그녀에게 "너는 친 아버지의 딸이 아니니 네 몫은 네가 챙겨라, 네가 너 자신을 돌보는 것을 배워야 한다"고 가르쳤다면 그녀는 이렇게 통분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녀에게 세뇌 교육으로 부모님에게 복종하고 부모님의 말에 거역하지 말고 부모님을 믿어야 한다고 한 말들은 모두가 그녀를 엄마의 하인으로 동생들을 업고 키우는 식모처럼 부렸고 그 결과 이복 여동생들은 멀쩡하고 그녀들은 그녀들이 하고 싶은 말들을 긍정적이든지 부정적이든지 마음대로 부모님에게 하고 있는 것을 보면서 그녀를 이용한 엄마를 용서할 수 없다는 분노였다.

 엄마는 D부인의 남편의 직장을 잃고 실직했을 때 그녀의 가족에게 목장을 해서 젖소를 키우고 젖을 짜서 같이 동업을 하자고 했다. 목장의 젖소 들이 잘 자라서 어른 젖소로 키워 놓으면 엄마는 그 젖소들을 팔면서 젖소는 엄마가 하고 너희는 땅을 거져라고 했고 땅 값이 뛰면서 돈이 되니까 이제는 땅은 엄마가 하고 너희는 젖소들을 가져라 라고 이야기를 한 것에서 배신감을 느꼈다고 했다. 좋은 것은 언제나 엄마 몫이고 D부인은 이용만 당하고 노예처럼 사육되었다는 배신감에 치를 떨었다.

 

치료의 결과

 D부인의 이러한 분노들은 치료의 과정에서 치료자에 의해서 D 부인이 지금까지 표현하지 못하고 억압되어 심층에 쌓인 그녀의 감정을 말로써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의 성장으로 대체되어져 갔다. 이러한 과정에서 그녀의 분노, 노여움, 적대 감정이 방출되어지고 마음은 안정되어지고 상처로 심층에서 떠돌던 갈등들이 감정적 정화를 거치면서 하나씩 자아의 뼈대에 통합되고 침투 사고는 줄어들어 건강한 자아 쪽으로 발전해 간다는 치료자의 치료 목적을 D부인이 이해를 하게 되어갔다.

 치료자는 D부인에게 그녀의 감정 표현의 자아가 자기 주장의 자아가 그녀 자신의 욕구를 알고 그것을 상대에게 표현할 수 있는 자아가 점점 자라나게 되면 언젠가는 D부인이 어머니, 양부 그리고 배다른 이복 동생들 그리고 시부모 가족 구성원들에게 자신의 억울하고 한 맺힌 이야기들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더 붙였다. 그 시기가 언제가 될 것인지는 치료자도 모른다고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 시점에 바로 다음 주일이 될지 한달 후가 될지 그리고 1년, 2년 후가 될지는 치료자는 모른다고 부연을 했다. 그녀가 그러한 그녀 자신의 내면의 욕구, 상처들을 이야기를 할 시즘에는 그녀의 자아가 자라나서 어른의 자아가 될 시쯤에서 D부인의 치료가 끝이 날 것임을 강조했다.

 위와 같은 분노들이 터져 나오면서 그녀의 울분은 눈물과 하소연으로 치료의 시간이 24시간으로 흘러갔고 그녀는 이제는 어머니, 양아버지에게 이러한 억울함을 조용하게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자아가 성장하는 것을 느낄 수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D 부인이 48시간의 근접에 도달하게 되면서 그녀의 변화와 치료의 과정을 상세하고 알고 싶은 사람은 다음의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