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상: 57세의 부인 D씨

증세: D씨는 2000년도에 환청으로 6개월 동안 xxx 신경 정신과에서 약물 치료를 받았고 7년 후 2007년에 환청이 다시 재발 xxx 종합 병원에서 1년 동안 약물 치료를 받고 호전되었으나 2008년에 다시 불면증으로 1.5개월 동안 xxx 종합 병원에 입원 후에 몇 개월 동안 안정되었으나 다시 한번 불면증으로 응급실에 실려간 적이 있음. 이후 지금까지 3년 동안 정신분열증, 우울증, 불안증, 불면증 약물을 계속 복용해 오고 있으나 최근에 불면증이 심해져서 불면증 약물 투여량을 증가시켜 복용하고 있으나 별로 효과가 없다고 했음

진단: 우울증, 불안증, 불면증, 정신분열증

연결: D씨는 2년전에 결혼해서 분가해 직장 생활을 하고 있던 그녀의 아들이 불안증과 대인관계 때문에 치료자 한데서 6개월 동안 정신분석 심리치료를 받았던 사람으로 그 때 그가 그의 어머니가 정신분열증으로 고통을 받고 있다면서 그의 어머니를 정신분석 심리치료를 받게 하려고 다짐을 했으나 사정이 여의치 않아서 지금까지 미루어 오다가 최근에 약물 치료에 크게 실망한 어머니를 설득해서 어머니가 스스로 정신분석 심리치료를 받으러 오게 되었음

치료 결과: 아래의 분석은 D부인의 제 15회(1회기 당 3시간)의 치료 회기 즉  45시간의 치료 시간을 통과해서 지나가면서 그 동안의 치료 과정과 결과를 요약한 것이다. 총 48시간의 치료 계약을 1회기를 남겨 놓고 그녀가 지금까지 받은 치료 기간 동안의 변화를 요약한 것이다. 그녀는 더 이상 자살 충동은 나타나지 않는다고 했다. 심하게 우울한 무드 역시 개선되었다. 지금은 과거의 상처 생각들이 머리 속에 더 이상 침투해 들어오지 않는다고 했다. 마음이 안정되고 조용한 평화로운 생활을 하고 있다고 기뻐 했다.

 

치료의 과정

 치료자는 D 부인에게 이번 주일에는 어떻게 보냈는지 물었을 때 그녀는 지난 주일에는 마음이 평화롭고 조용하게 보냈으며 지금은 과거의 생각들이 더 이상 침투해서 머리 속에 들어오지 않는다고 웃으면서 말을 했다. D 부인의 웃는 모습을 오래간 만에 보는 것 같아서 치료자는 기분이 좋았다. 이번 회기의 3시간 동안은 D 부인의 친 아버지에 대해서 다루어 보기로 했다.

 

과거의 기억 회상

 치료자가 친 아버지에 대해서 기억나는 것이 있으면 이야기를 해 보라고 물었을 때 그녀는 친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회상되는 것이 없다고 쓸쓸해 했다. 친 아버지를 4살 때 잃어 버렸으나 친 아버지에 대한 어린 시절의 기억은 회상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나 친 아버지의 이름을 김 xx 로 정확하게 기억은 하고 있었다. 어떻게 친 아버지의 이름을 기억을 하고 있는가?를 물었을 때 D 부인은 초등학교 고학년 때에 엄마가 친척과 전화로 통화를 하는 도중에 친 아버지의 이름을 거론하는 것을 듣고 기억을 하고 있었다고 대답을 했다.

 치료자는 틀림없이 친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나 보고싶음이 무의식 속에 있을 것이니 한번 꼼꼼히 생각을 해 보라고 요청을 했다. 이유는 과거에 어린 시절에 정리되지 않는 일들(unfinished business)은 어른 시절에 반드시 정신과 적인 문제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그녀는 어린 시절인 4살 때 친 아버지를 잃어 버리고 어머니마저 재혼으로 그녀의 곁을 떠났기 때문이다. 또 인간이기 때문에 친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있을 것이라고 보았기 때문이었다. 다시 한번 친 아버지에 대한 기억나는 이벤트가 있느냐는 질문에 그녀는 그녀가 2000년 도에 처음 정신분열증이 발병을 했을 때 그 때 정신 이상 상태에서 친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고 그녀 자신도 놀랬다고 했다. 정신 이상 상태에서 꽃 병에 있는 그림 무늬에 있는 새가 친 아버지라고 말하면서 친 아버지와 대화를 하고 있는 D 부인의 모습을 가족 구성원들이 보고 기절 초풍했다고 전해 들었다고 했다. 이후에 그 꽃병은 그녀의 방에서 다시 볼 수는 없었다. 남편이 그 꽃 병에 그려진 새를 보고 아버지라고 말을 하면서 아버지와 대화를 하고 있는 것에 기절 초풍해서 남편이 그 꽃병을 내다 버렸다는 이야기를 이후에 들었다고 했다.

 치료자가 친 아버지에 대한 꿈을 꾼 적이 있는지를 물어 보았을 때 D 부인은 그녀가 2000년에 정신분열증이 발병을 하기 전해인 1999년에 친 아버지에 대한 꿈을 꾼 것을 기억을 했다. 꿈 속에서 친 아버지의 얼굴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친 아버지가 나타나서 그녀를 친족과 가족 들에게 소개를 시켜주는 꿈을 꾼 것을 회상을 하고 있었다. 치료자는 이 꿈이 그녀의 무의식을 반영하는 것으로 해석을 해 주었다. 그녀의 무의식 속에는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 보고 싶음을 간직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 아닌가! 이것을 그 꿈이 그녀에게 그녀의 내면 깊숙이 묻어놓았던 친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꿈이라는 활동 사진을 통해서 그녀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후에 초, 중, 고등학교 시절에 양 아버지로부터 친 자식들 즉 두 명의 여동생들과 차별을 하는 것을 경험을 하면서 친 아버지에 대한 생각을 해 보지 않았느냐는 치료자의 질문에 그녀는 그 시점에서는 친 아버지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았다고 했다. 어머니가 양 아버지의 차별 대우를 양 아버지의 성격 탓으로 돌리는 바람에 그러한 생각을 하지 않는 것 같다고 했다. 어머니는 D 부인을 세뇌를 시켜서 친 아버지를 생각하지 말도록 했다는 것을 그녀가 입으로 이야기를 했다. 항상 어머니는 "나는 너를 위해서 희생을 하고 있다. 너는 이곳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고 세끼 밥을 얻어먹는 것을 다행으로 생각하라, 네가 고아원에 가 있을 것을 내가 이곳에 데리고 와서 편안하게 세끼 밥을 먹게 하고 학교에 다니도록 해 주고 있는 것에 감사하라"라는 암시를 늘 주었기 때문에 그녀는 양부의 차별 대우를 양부의 성격 탓으로 돌리면서 양부를 탓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나 그녀가 결혼을 하기 전까지는 양 아버지를 한번도 "아버지"라고 부르지 않았다고 회고를 했다. 결혼 후에 양심적으로 이제 성인이 되었으니 양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했다. 사춘기에 예민한 시점에서는 양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를 수가 없었다고 했다. 양 아버지도 그녀를 한번도 그녀의 이름을 불러 준 적은 없었다고 했다. 한번도 양 아버지는 그녀에게 눈맞추기, 눈길를 준 적이 없었다고 했다. 언제나 그녀의 눈길을 피했고 그녀 역시 양 아버지를 똑 바로 쳐다보지 않고 눈길을 피해다녔다고 회고를 했다. 결혼 이후에 양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르고 맨 먼저 양 아버지의 생일을 챙겨주지 시작했고 이후에 이복 동생들이 아버지의 생일을 챙겨주게 되었다고 했다.

 그녀가 정신분열증이 발병을 해서 이상한 소리를 하고 이해를 하지 못하는 말들을 혼자서 중얼거릴 때 양 아버지가 어머니와 함께 병 문안을 왔다가 D 부인이 양 아버지를 보자 말자 "아버지는 내 방에 들어오지 마세요. 아버지는 무섭습니다.아버지를 보고 싶지 않습니다."라고 말하는 바람에 양 아버지는 그녀의 방에 들어오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가려고 하자 어머니가 "그래도 딸이 병이 들었는데 딸이 하는 말을 듣고 도망가려고 하느냐?"고 말리는 통에 집으로 돌아가지 못했다고 했다. 이후에 그녀가 정신이 돌아왔을 때 그녀는 양 아버지를 보고 "아버지 오래 사십시오"라고 이야기를 한 것을 회상을 했다. 양 아버지에게 한 그녀의 말에 그녀의 양심인 초자아가 죄의식을 느끼고 양 아버지에게 미안함을 표현을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정신이 이상한 상태에서 양 아버지에 대한 그녀의 솔찍한 무의식 속에 묻어 놓은 말들이 터져나온 것임을 치료자가 지적을 했을 때 그녀 자신도 인정을 했다. 그녀의 내면의 깊숙한 곳에서는 친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 사랑이 분명히 숨겨져 있었다. 그녀는 엄마의 눈치 때문에 그러한 말들을 입밖에 끄집어 낼 수 없었고 무의식 속에 눌러서 묻어 놓았던 것이 증명이 된 것이었다.

 왜 하필 어린 시절과 사춘기 시절에는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한 마디도 표현하지 못하고 이후에 결혼을 한 후에 정신분열증의 발병에서 내면 속에 묻어 놓은 친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들이 터져 나왔는가? 그 이유는 사춘기 이전에는 엄마의 눈치를 보면서 엄마의 말들을 100% 믿었다. 엄마가 D 부인을 위해서 희생을 하고 있고 D 부인의 복지를 위해서 모든 것을 다 해주고 있으니 엄마의 말을 믿고 따라 오라는 말에 D 부인은 의심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결혼 이후에 배우자의 선택에서 엄마에게 배신감을 느꼈고 엄마의 농장에서 제대로 대우를 받지 못하고 황무지를 개간하는 노동자, 인부의 역할을 했고 정작 노동 가치에 대한 대접을 받지 못했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면서 그녀는 엄마에 대한 배신감과 적대 감정에 휩싸이면서 눌러서 무의식 속에 억압해 두었던 엄마에 대한 반항 의식이 올라오게 되었고 이것이 분출구를 찾으면서 정신분열증이 된 것이었다. 정신분열증 속에서 그녀는 엄마에게 하고 싶은 말들을 쏟아 놓게 되었다. 돌 아이적인 상황에서 그녀가 엄마에게 하고 싶었던 이야기들을 쏟아놓게 되었지만 그녀는 그러한 그녀이 행동에 죄의식을 느낄 필요성이 없었다. 왜냐하면 그녀는 가족 구성원들이 돌아이적이라고 생각하는 행동을 했기 때문에 가족 구성원들이 그녀를 정신 이상으로 보았기 때문에 그녀가 그러한 말들을 내 뱉았어도 그 말에 무개를 두지 않았고 가족들이 그녀의 말들을 흘려 들었다는 점이다. 고로 그녀는 죄의식이나 가족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그녀의 내면에 쌓인 그녀가 엄마와 양부, 그리고 여동생들에게 섭섭한 평소에 하고 싶었던 말들을 무의식 속에 쌓아놓은 말들을 그침없이 마구 쏟아놓을 수가 있었다. 이것은 술에 만취한 사람이 취중에 하고 싶은 말들을 쏟아내 놓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취중에 한 말이 진담이다라는 우리의 옛날 조상들의 이야기가 정신분열증 상황을 만들어서 내면 깊숙히 쌓아 놓은 비밀스러운 이야기들을 횡설수설 쏟아내 놓는 것과 무엇이 다르랴! 이것을 보면 인간의 무의식이 얼마나 교모한가! 그녀는 돌 아이적인 상황에서 그녀가 평생 동안 하고 싶었던 말들을 주변의 눈치를 보지 않고 지금까지 하고 싶었던 말들을 쏟아낼 수가 있었다. 정신분열증 상황에서 그녀가 쏟아 놓은 말 조각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면 "친 엄마는-- 계모" "꽃 병에 --그려진 새는 친 아버지" "그 새와 대화를 한다" "그 군인의 자살은 내 때문에" "양부를 보고 싶지 않다. 양부는 내 방에 들어오지 말라" "양부는 무섭다. 겁난다" 등의 말들의 조각들을 모아 보면 그녀의 어린 시절과 사춘기 이후에 성인기 시절의 그녀의 상처받은 것들, 평소에 하고 싶었던 말들임을 알 수가 있다. 그녀는 엄마가 D 부인이 지끌이는 정신 이상 상태에서 하는 말들을 듣고 나서 엄마는 "D가 그녀가 하고 싶었던 말들을 다 하고 있다"라고 그녀에게 한 말이 기억이 난다고 했다.

 D 부인에게 치료자가 "어린 시절과 사춘기 시절에 친 아버지 형제들과 접촉이 전혀 없었습니까?"라고 물었을 때 그녀는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에 방학 때가 되면 그녀의 아버지의 친가를 꼭 방문을 했었다고 기억을 회상을 했다. 엄마는 그녀가 친가를 찾는 것을 반대하지는 않았다. 아버지의 친가에는 큰 할아버지 가족이 살아 있었고 큰 할아버지는 그녀가 방문을 할 때 마다 눈물을 흘렸던 것을 기억을 하고 있었다. 친 아버지는 어머니와 결혼을 한 후에 1년-2년 후에 폐결핵에 걸렸고 몇 년간 고통 속에 살다가 세상을 떠났다고 했다. 친 아버지는 어렸을 때 엄마와 아빠를 잃고 큰 아버지 (큰 할아버지) 밑에서 성장을 했고 큰 할아버지는 아버지가 자식처럼 생각되었을 것이라고 그녀가 회상을 했다. 큰 아버지의 아들과 딸이 그녀에게 잘 대해주었던 것을 회상을 했다. D 부인이 중학교 시절에 큰 할아버지의 딸이 그 시즘에서 대학생이 되었고 그 시즘에서 D 부인을 데리고 영화를 보러간 것을 회상을 했다. 그녀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목제소에 취직을 해서 다니고 있을 때 큰 할아버지의 아들이 결혼을 한 후에 당숙모(아들의 부인)가 그녀에게 친 아버지의 사진이 있으니 한번 보겠느냐?고 물어왔을 때 그녀는 대답을 하지 않았던 것을 기억을 했다. 그 이후에는 큰 할아버지가 세상을 뜬 후에는 더 이상 큰 할아버지 가족들을 찾아가지 않았다고 했다.

 D 부인은 또 한가지를 친 아버지와 관계를 해서 들었던 이야기를 회상을 했다.그녀가 결혼을 하고 남편이 직장을 잃어 버려서 엄마의 농장에서 노동자, 황무지를 개척하는 개척자의 역할을 하고 있을 때 그 시점에서 엄마는 여동생이 연애를 해서 고등학교 수학 교사와 결혼을 하게 되어 여동생이 엄마에게 배우자가 될 사람은 돈이 없는 사람으로 아파트를 하나 사 주어야 한다고 졸랐을 때 D 부인이 일구어 놓았던 그 땅을 팔아서 여동생의 아파트를 사주기 위해서 그녀와 가족들을 내 쫓았다. 그 시점에서 큰 할아버지 댁에서 어느 날 한 마리의 새가 날아 와서 지저기면서 우는 바람에 할아버지가 이상하게 여겨서 점을 해 보니 친 아버지가 딸(D 부인)을 두고 저승으로 가지 못하고 구천에서 헤매고 있다는 말에 무당을 불러서 크게 굿을 했다는 말을 전해듣게 되었다고 했다. 이후에 당숙(큰 할아버지의 아들)이 친가의 결혼식에서 우연히 엄마를 만나게 되었고 당숙이 엄마에게 "xxx가(D 부인) 별 일이 없는지요?"라고 물어면서 "큰 할아버지가 어느 날 새가 와서 슬피우는 것을 이상하게 여겨서 점을 하게 되었고 무당을 불러서 xxx의 친 아버지의 한을 풀어 들렸는데 xxx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이 아닌가요?"하고 물었고 엄마는 아무 일도 없다고 대답을 것을 엄마로부터 전해듣게 되었다고 이야기를 했다.

 그녀는 친가의 가족들이 그녀의 양 아버지보다는 그녀를 더 많이 걱정해주고 그녀에게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회상해 보게 했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말이 이제야 실감이 난다고 친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실토를 했다. 그녀는 겉으로는 친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없는 듯했으나 내면의 심층에는 친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간직하고 있음을 실토를 했다.

 치료자는 D 부인으로 하여금 친 아버지에게 하고 싶은 말들을 재연해서 마음 놓고 해 보도록 했다. 아버지에게 양 아버지에 대한 섭섭한 말들을 쏟아 놓게 했다. 정신분열증의 상황에서 했던 말들을 회상 시키면서 무의식 속에 갇혀 있던 말들을 아버지에게 하도록 했다.그녀는 3시간 동안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과 양 아버지와 엄마에 대한 차별 대우와 섭섭함을 마음대로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그녀는 양 아버지와 엄마에게 "엄마는 내 복지를 위해서 엄마가 모든 것을 다 해 주겠다고 해 놓고 결국은 나를 시집을 보내면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나에게 초등학교밖에 나오지 않는 배우자를 선택했고 배우자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아 보지도 않고 나를 소위 "도매금" "도매 가격" "싸구려 가격"으로 나를 시집을 보내 버려서 내 인생이 이렇게 만년에 정신분열증에 걸리된 것에 한이 맺힌다고 하소연을 토해 놓았다. 친 딸을 시집을 보내면서 친 딸에게 아파트를 사주기 위해서 그녀의 가족들을 목장에서 하루 아침에 내 쫓으면서 그녀의 가족은 살 집도 없고 남편이 직장도 구하지 못하고 그녀와 남편이 죽자고 모든 노력을 해서 일구어 놓은 옥토를 팔아서 친 딸의 아파트를 사주면서 친 딸은 남편이 고등학교 교사로 있어서 밥 굶어죽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그녀의 가족들을 살 집도 없고 직장도 없는데도 불구하고 추운 겨울에 목장에서 내 쫓아 낸 것에 대한 분노를 마음 껏 표출하도록 했다.

 아직도 그녀는 앞으로 많은 치료 시간이 필요함을 인정을 하고 있다. 친 어머니 한 데서 아직도 그녀는 그녀가 하고 싶은 이런 한 맺힌 이야기들을 한 마디도 하지 못하고 있다. 그녀는 단지 정신분열증이라는 정신 이상 상태에서 앞과 뒤가 맞지 않는 이상한 말 조각들을 그냥 마구 잡이로 토해 놓은 것이 전부였다. 논리적으로 모든 과거의 상처들을 솔찍하게 아직도 친 어머니와 양 아버지에게 털어 놓을 만큰 자아가 자라지 못하고 있다고 시인을 했다. 그녀가 이러한 내면 속에 섭섮함을 부모님에게 그리고 배다른 여동생들에게 마음 놓고 털어 놓을 수가 있을 때 즉 그녀의 자아들이 성숙하고 성장을 했을 때 비로소 그녀는 그녀의 정신분열증에서 완전히 빠져 나올 수 있다는 것을 치료자에게 듣으면서 아직도 그녀가 친 어머니에게 한맺힌 이야기를 할 자신이 없다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서 그녀의 자아는 아직도 많이 자라야 함을 그리고 치료에서 그녀의 자아가 자라나는데 많은 시간이 걸린다는 것을 그녀도 인식하고 시인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