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심하게 우울하거나 정신증으로 그들의 자녀들에게 감정적 접촉을 해 줄 능력이 없었다. 비록 신체적 돌봄은 적당했지만 아기를 안아주고 쓰다음어 주고 대화를 하는 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그 어린이에 대한 엄마의 태도에 심각한 왜곡이 있었다. 그 엄마는 그 어린이를 분리된 인간으로써 지각할 수 없었다. 고로 그 어린이의 일부에서 너와 나를 구분할 수 있는 상대적인 능력을 개발할 수 없었다  

 

---하버드 의과대학 정신과 의사, 정신분석학자, 모델(Modell)---

역동적 정신의학의 역사적 관점에서 본 해리 장애의 역사

역동적 정신의학의 조직적인 연구의 한 개의 흐름은 특이한 질병에서 시작되었다. 대표적인 질병이 몽유병에 대한 과학자들과 철학자들의 관심과 연구였다. 1840년부터 1880년까지 유럽에서 몽유병에 대한 연구가 유행을 했다(Ellenberger, 1970).

몽유병은 낮에는 정상적인 생각과 행동을 하는 사람으로 밤에 잠을 자는 수면 시에 일어나서 어떤 수행을 하고 움직이지만 깨어나서는 기억을 하지 못하는 질병이다. 이 질병에 대한 연구는 최면학에서 최면에 걸린 사람들이 행동과 대화를 하지만 깨어나서는 기억을 하지 못하는 것에서 공통점의 발견에서 시작되었다. 여기에 기억 상실과 무감각과 그리고 강경증이 한몫을 하게 되었다. 몽유병과 최면에서 자주 등장하는 무감각과 기억상실 그리고 강경증의 공통점을 연구하게 된 것이었다(Ellenberger, 1970).

1785년에 피테틴(Pitetin)이라는 의사가 18세의 소녀로 그녀가 발짝적인 증세로 쓰러진 이후에 심한 통증으로 고통에서 그에게 치료를 받게 되었다. 치료의 과정에서 그녀는 회복이 되었지만 복부에 심각한 통증을 호소를 하게 되었다. 그녀는 특이하게 복부에 통증으로 5감각의 느낌을 느끼는 것 이외에는 온 몸이 무감각 상태였다. 이것을 강경증(catalepsy)이라고 불렀다. 이 병은 움직임이 없고 무감각한 상태를 말한다(이후에 정신분열증에 포함되어져서 긴장성 혹은 균열성 정신분열증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지금은 좋은 약물의 등장으로 긴장성 정신분열증은 거의 사라졌다). 강경증에 대한 연구는 이후에도 이어졌다(Ellenberger, 1970).

1859년에 가르코트(Charcot)의 스승이었던 히스테리아의 대가였던 의사 브리켓(Briquet)이 그의 병원에서 430명의 히스트레아 환자들을 직접 치료를 하면서 그 결과를 출판된 히스테리아가 주목을 받았다. 그는 강경증 환자들은 남자와 여자의 비율이 거의 비슷하지만 히스테리아는 남자와 여자의 비율이 여성이 20%나 많았다고 발표를 하면서 강경증과 히스테리아는 다른 질병으로 구분을 했다. 그러나 공통점인 무감각과 기억 상실이라는 점을 들었다. 특별히 그는 최면에 걸리는 사람들이 히스테리아 대신에 강경증에 잘 걸린다고 보고를 했다(Ellenberger, 1970).

이미 그 이전에 1835년에 프리차드(Prichard)환상의 시각(비전)”이라는 책을 출판을 해서 환상의 상태에서는 사고의 연결이 끊어지고 혼란과 정신착란(일시적으로 정신적인 기능이 마비)의 상태가 된다는 연구 결과를 보고를 했었다. 그는 그의 저서에서 환각의 시각들 즉 강경증의 증세들의 무감각적인 특징은 일종의 백일몽의 상황으로 정의를 했다(Ellenberger, 1970).

또 다른 병으로 등장한 기억 상실증은 오늘날 분류에서 파구(fugue)(심리적 기억상실증)라고 불리우는 정신병이다. 몽유병은 수면 시에 등장하는 병이지만 파구는 낮 시간 동안에 몽유병처럼 수행을 하고 행동을 하는 것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병이다. 기억 상실증에 대한 치료 사례들은

가르코트의 화요일날 세계적인 명사들의 특별 강의에서 많이 등장을 했다. 가르코트는 기억 상실의 증세들을 히스테리아 속에다 포함을 시켰다.

한 산파 여성이 분만을 도와주려고 그녀의 집을 나가다가 넘어져서 정신을 잃었다가 깨어나서 분만을 하는 여성의 집으로 가서 그녀의 출산을 도와주고 집에 돌아와서 잠을 자고 나서 전날에 분만을 도와준 것을 기억을 하지 못하는 사례들이 발표 되었다.

유명한 사건은 쇼젤(Sorgel)이라는 시골 목사가 어느 날 산에 나무를 하러 갔다가 어떤 사람을 살해하고 그의 발목을 잘랐다. 집에 와서 혼란함을 보이다가 그는 다시 정신이 깨어나서 그 살인 사건을 전혀 기억을 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법정의 판결은 그가 정신이상 상태에서 살인을 한 것을 인정을 해서 무죄를 선고를 했던 사건이었다.

유사한 사건은 부르고졸리 대학 정신병원의 치료 국장이었던 포엘(Forel) 박사에게 N이라는 32세의 젊은이가 치료를 요청을 했다. 그는 어느 날 신문 기사를 읽고 깜짝 놀랬다. 그의 이름이 난 신문 기사에서 그는 그가 행방불명으로 사라진 것을 보고를 하면서 그가 실종으로 사망한 것으로 보도를 한 것이었다. 그의 호주머니에서 N이라는 이름이 발견된 것이었다. 그를 치료한 포엘 박사는 그에게 최면을 걸어서 그가 스위스 사람으로 오스트랄리아로 건너가서 공무원 시험에 합격해서 그곳에서 공무원으로 근무를 하다가 질병을 얻어서 다시 스위스로 되돌아온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질병이전의 자신을 잊어버렸고 그리고 이후에 과거의 자아를 되찾아서 스위스로 되돌아 온 것이 최면의 시간 여행에서 알게 되었다. N씨는 자아가 스위스에서 A라는 자아, 그리고 호수에 공무원으로 간 B라는 자아를 두개를 가지고 있었고 이 두 개의 자아는 서로 모르는 전혀 다른 자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포엘 박사의 연구로써 이중 성격이론이 그리고 다중 성격 이론이 등장하게 되었다(Ellenberger, 1970).

이후에도 여러 학자들과 정신과 의사들에 의해서 그리고 작가들에 의해서 이중 성격 혹은 다중 성격의 연구와 치료 사례들이 등장하게 되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1815년에 미국의 의사 존 미첼(John Mitch)에 의해서 마리 레이놀드 양의 치료 사례였다. 그녀는 영국의 귀족 윌리암 레이놀드(Whilliam Reynold)경의 딸로써 미국에 이민을 와서 야생의 지역에서 생활을 하다가 19세 때 어느 날 넘어져서 의식을 잃고 1.5개월 동안 귀머거리와 장님으로 보내다가 회복을 하고 나서 3개월 후에 완전히 이전과는 다른 사람으로 변하게 되었다. 그 사건 이전에는 우울하고 말이 적고 그리고 조용한 성격인 A양이었으나 이것이 다른 성격인 B양으로 바뀌면서 하루 아침에 밝고 명랑한 성격으로 시와 운문을 좋아하는 쉴 줄을 모르는 성격으로 바뀌었다(Ellenberger, 1970).

또 다른 사례는 자석 치료사(최면 치료의 이전의 이름)인 의사인 데스피네(Despine)의 치료 사례의 보고서였다. 1936, 11월에 스위스에서 그는 11살의 E양이 엄마와 함께 그에게 치료를 받으러 왔다. 그녀는 11살 때 어느 날 놀이를 하다가 넘어져서 심각한 마비 증세를 보이게 되었다. 십자가에 못 박은 것 같은 심각한 고통 속에서 마비 증세, 환각, 백일몽들을 보였다. 다른 약물 치료를 실패를 하자 데스피네가 1936 12월에 자석 치료를 시작하게 되었다. 자석 치료 안에서 그녀는 움직일 수 있고 걸어갈 수가 있었고 환각과 백일몽에서 벗어날 수가 있었다. 특이한 것은 매번 12시간 마다 두 개의 자아 즉 병적인 자아와 정상적인 자아가 서로 교체가 되었다. 병적인 상황 안에서는 고양이의 모습이 그녀를 강경증(무감각과 움직임이 없음)으로 몰고 갔다. 그리고 음식들을 먹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자석 치료 안에서는 회복이 되었고 음식들을 풍부하게 먹을 수 있게 되었다. 테스피네 박사는 두 개의 분리된 자아 즉 병적인 자아와 정상적인 자아를 통합하는 쪽으로 치료를 하면서 이후에 퇴원을 했고 그 이후에 재발이 없었다는 그의 연구 결과를 보고를 했다(Ellenberger, 1970).

 작가들의 작품들 속에서 인기 있는 영국의 소설가인 스티번슨(Rober Louis Stevenson)의 작품인 지킬 박사와 하이트(1886)”는 유명한 작품으로 낮에는 지밀 박사가 되고 밤에는 하이트라는 괴물이 되는 두 개의 성격이 번갈아 등장하는 작품은 위와 같은 사례들을 작품으로 만든 것으로 19세기에 인기가 있었다.

1900년에 개체 된 제 4 회 국제 심리학 총회에서 모르톤 프린스(Morton Prince)가 다중 성격에 대한 연구를 발표를 했다. 그리고 두란드(Durand)의 다중 심리학(Polypsychism)이 발표 됨으로써 다중 성격과 이중 성격에 대한 연구가 조직적인 체계를 설립을 할 수가 있었다(Ellenberger, 1970).

다중 성격의 기원은 이미 오래 전에 성 오그스틴(St. Augustine)의 참회록, 고백록에서 그는 이교도 시절 무신론적인 그의 성격이 캐토릭 신부가 된 이후에도 꿈 속에서 등장한다고 고백을 하면서 의식 상태에서 신부로써의 성격과 수면 시에는 무신론적인 성격의 갈등과 싸움을 스스로 호소를 한 것이 이중 성격의 시발점이 되었다(Ellenberger, 1970).

다중 성격에 대한 연구는 프랑스의 의사로 19세기 후반에 최면 치료사로써 출발해서 20세기의 심리적 분석으로 프로이트의 정신분석과는 다른 이름으로 자신의 치료 기법을 이룸을 붙이면서 심리치료사로 탈바꿈을 한 피에르 장(Pierre Janet)에 의해서 세부적인 연구로 체계화가 되었다(Ellenberger, 1970).

그는 이 장애를 해리성 장애로 이름을 붙였다. 어린 시절에 부모로부터 받은 심리적 상처들 때문에 어린이들은 자신의 자아를 싫어하고 다른 사람으로 태어나고 싶어하거나 혹은 다른 사람이 되기를 소망하는 기대와 소망들이 자신의 자아와 다른 새로운 사람으로 자아를 만들어가는 것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다중 성격의 치료를 통해서 밝혀냈다. 다중 성격의 치료 치료는 이후에 학자들에 의해서 서로 다른 A성격과 B의 성격을 환자 자신이 서로 알게 만들어서 통합으로 치료를 해 나가는 치료 기법들이 발달하게 되면서 해리성 장애의 치료가 등장하게 되었다(Ellenberger, 1970).

우리나라에서는 해리성 장애가 한 사람의 성격 속에 다른 사람의 성격이 살고 있다는 눈에 보이는 현상들로써 이름이 붙여진 빙의(다른 사람의 영혼이 그 사람의 몸에 들어와서 살고 있는)라는 이름으로 귀신이 씌였다라는 이름으로 아직도 사용되고 있고 다른 사람의 영혼을 쫓아내는 귀신을 쫓아내는 굿을 하는 퇴마의식이 아직도 존재를 하고 있다(Ellenberger, 1970).

이후에 학자들의 연구를 통해서 다중 성격은 여러 가지 종류로 분류되어지고 있다.

1.  동시적인 다중 성격: 두 개의 성격이 서로서로를 알고 있는 경우이다. 어느 한쪽이 우세하지 않고 둘 다 비슷한 비율과 교대로 등장한다.

2.  상호 인식적, 연속적인 다중성격: 두 개의 성격은 서로서로를 잘 알고 있다.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둘 다 동시에 형성되었고 한쪽은 다른 쪽의 특징들을 더 잘 알고 있다.

3.  상호 건망증적 다중 성격: 두 개의 성격은 서로에 대해서 모른다.

4.  한쪽 방향 건망증적 다중 성격: 한쪽은 상대를 아는데 상대방은 모른다. 성격 A는 성격 B를 알고 있다. 그러나 성격 B는 성격 A를 전혀 모르고 있다.

5.  성격의 집합, 군집: 최면 상태에서 새롭게 등장한 성격 B의 성격에다 다시 최면을 걸었을 때 B 라는 성격 안에서 새로운 C라는 성격이 발견되는 경우도 있었다.

20세기의 후반기에 들어와서 성격장애의 분류들이 정리가 되면서 1980년에 세 번째 개정판인 DSM-Ⅲ에서 다중 성격과 심리적 기억 상실증은 파구(Fugue)는 성격장애의 그룹과 신경증의 그룹인 불안장애 그룹과 정신증의 그룹으로부터 따로 분류가 되어져서 해리성 장애(Dissociation Disorders)들로 분류되어졌다.

이 그룹에 들어가는 장애들은 해리성 기억 상실증, 기억 상실증 파구(Fugue), 내가 아닌 것처럼 느껴지는 장애(Depersonalization) 그리고 주체성 해리 장애 등으로 세분화가 되었다.

해리성 기억 상실증은 어떤 특정 기간 동안의 기억을 할 수 없거나 혹은 일반적인 기억 상실로 어떤 사건 이전의 기억을 상실한 경우 즉 과거의 기억을 잊어버린 사람들 예를 들어서 이름과 출생지와 가족들의 기억들을 모두 잊어버린 과거를 잊어버렸지만 그 사건 이후에 기억들을 보존을 하고 있는 경우가 있고 그리고 과거의 기억들은 보존을 하고 있지만 그 사건 이후의 기억들을 상실한 경우가 있다.

기억 상실증 파구는 어떤 사건 후에 과거의 기억을 잊어버리고 다른 지역에 가서 다른 이름으로 살거나 일을 하거나 결혼을 하면서 살고 있는 사람들로써 그는 과거의 기억을 전혀 모르고 새로운 사람으로 살아가는 경우를 말한다.

내가 아닌 것처럼 느껴지는 것으로는 현실 감각은 손상이 없지만 자아가 분리되어지는 느낌, 자아가 자신이 아린 것처럼 느껴지는 것으로 마치 꿈 속에서 사는 것처럼, 한 개의 영화 속에서 살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을 말한다.

주체성 해리장애는 성격 A와 성격 B(혹은 성격 C)가 서로서로 모르고 교체되어지는 사람으로 칸막이가 되어서 서로 소통이 안 되는 자아로 여러 개의 자아들을 가진 경우도 있다. 지금까지 알려진 사례들로는 이브의 다섯 개의 자아라는 영화로 만들어진 사례로 한 사람 속에서 서로 모르는 5사람의 자아로 칸막이가 되어서 그들의 어떤 상황에서 서로 교대로 나타나는 경우에 해당된다.

 

 해리 장애들의 특징들

해리장애들의 핵심 특징들은 의식, 기억, 주체성 혹은 환경의 지각의 통합된 기능들 안에서 항상 한 개의 혼란이 있다.그 혼란은 갑자기 혹은 점진적으로 일시적으로 만성적으로올 수도 있다. 다음과 같은 장애들이 이 분야 안에 포함된다.

해리성 기억 상실증: 중요한 개인적인 정보를 기억할 수가 없다는 것이 특징이다. 항상 스트레스적인 본질이나 혹은 상처적인 본질의 중요한 정보를 기억을 할 수가 없다는 것이 특징이다. 이것이 너무 광대해서 일반적인 잊어버림에 의해서 설명이 되어질 수 없다.

해리성 파구(fugue): 갑작스럽게 예기치 않았던 집으로부터의 여행,익숙한 일하는 장소로부터 예기치 못하게 여행을 하는 것이 특징이다. 과거를 기억할 수 없음을 동반한다. 개인의 주체성에 대해서 혼란 혹은 새로운 주체성을 가진 체 하는 것에 의해서 특징이 된다.

주체성 해리 장애(과거 다중 성격 장애): 주체성 해리장애는 두 개 혹은 여러 개의 분명한 주체성의 존재에 의해서 특징이 된다. 일반적인 잊어버림에 의해서 설명되어질 수 없는 개인적인 중요한 정보를 회상할 능력이 없는 것을 동반하는 그 개인적 행동을 간간히 컨트롤하는 성격의 상황들에 의해서 특징이 된다.

내가 아닌 것처럼 느껴지는(depersonalization) 장애: 손상되지 않는 현실 검증에 의해서 동반되는 신체 혹은 사람의 마음의 과정들로부터 거리감으로 느껴지는 즉 애착회피가 되는 느낌의 상황이 간간히 일어나거나혹은 지속되는 것이 특징이다.

위의 어느 것에도 해당되지 않는 특수화된 해리성 장애: 이 코트에 포함되는 장애들은 다음과 같다. 우세한 특징이 한 개의 해리적 증세이다. 그러나 어떤 특수한 해리 장애의 기준에 맞지 않는다.

해리 증세들은 급성 스트레스 장애, 상처 후 스트레서 장애(후기 외상 스트레스 장애) 그리고 신체화 장애를 위한 기준 세트 안에 역시 포함이 된다. 부가적으로 해리 장애 진단은 만약에 해리성 증세들이 이들 장애들의 어느 한 개의 과정 동안에만 배타적으로 일어나면 진단이 주어져서는 안 된다. 어떤 분류들 안에서 전환 반응행동은 한 개의 해리성 현상으로 고려되어질 수 있다. 그러나 DSM-Ⅳ 안에서 전환 장애는 구분되는 진단 안에서 일반적인 메디칼 조건들 혹은 신경적학적인 조건들을 고려하고 있는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서"신체화 장애"의 부분에 속해 있다.

여러 문화 즉 다(多) 문화적인 관점은 해리성 장애들의 평가에 특별히 중요하다 왜냐하면 해리 상황은 문화적 활동들의 흔한 수용되어지는 표현 혹은 많은 사회안에서 종교적인 경험들이기 때문이다. 해리는 본질적으로 병적이라고 고려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종종 의미 깊은 스트레스, 손상, 혹은 도움을 찾는 행동으로 연결되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해리에 의해서 특징되어지는 수 많은 문화적으로 한정되어진 증후군들은 불쾌감과 손상을 일으키는 원인이 된다. 그리고 병적인 설언서로써 인식이되어지고 있다.


[해리성 기억상실증][해리성 파구][주체성 해리장애][내가 아닌것처럼 느껴지는 장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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