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상: 30대 남자 Y군

증세: Y군은 머리 속에서 기계 소기가 들리는 환청 때문에 정신분열증 치료를 4년 동안 받고 있었으나 핵심문제는 대인공포증이 분명했다.

진단: 정신분열증, 대인 공포증

연결: 치료자의 홈 페이지를 본 아버지가 아들 Y구의 치료를 의뢰를 했다.

치료 기간: 1주일에 2회 치료 회기로 1치료 회기당 2시간으로 1주일에 4시간씩 치료를 계약을 했음. 아래의 분석은 Y군과 2번째 치료 회기로 총 4시간의 치료 결과를 분석한 것이다.

치료 결과: 아버지와 휴대폰 통화를 하고 나서 어머니가 아들 Y군을 데리고 치료실을 찾았다. 1시간 30분 동안 치료자와 치료 컨설팅을 마친 Y군은 치료자와 치료를 받고 싶다는 의사를 표현을 했고 나머지 30분 동안 치료자는 어머니와 Y 과 함께 치료 상담을 하면서 Y군의 핵심 문제게 대인공포증으로부터 정신분열증으로 연결된 것 같다는 분석으로 설명을 해주면서 치료를 받을 것을 권유했고 어머니가 치료자와 30분단 면담으로 Y군의 6개월 치료 계약을 허락했음

 

치료의 과정 

 Y군의 아버지가 치료자의 홈 페이지에 들어가본 다음에 치료자에게 휴대폰으로 전화를 했다. 약 30분간 아버지와 통화를 통해서 Y군이 고등학교 때 미국에 유학을 가서 정신분열증으로 귀국해서 5년간 약물 복용으로 환청은 사라졌으나 아직도 사회생활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하소연을 했다. 지금은 친척의 회사에 다니고 있는데 대인관계가 어려워서 심리치료를 받아야 하겠다고 문의를 했고 치료자는 6개월간 치료 계약을 하게 된다는 것 그리고 치료 비용과 치료 회기 수는 조절을 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정신분열증은 약물 치료와 병행을 한다는 것 등을 이야기를 해 주었다.

 며칠 후에 Y군의 어머니가 휴대 전화로 치료자에게 치료 컨설팅을 받고 싶다는 문의가 있어서 치료 시간을 정했다. 약속 시간에 치료실에 인터폰으로 벨을 누른 사람은 Y군이었다. Y군은 오늘 치료를 약속한 사람입니다라고 말을 하는 것을 보고 치료자는 깜짝 놀랐다. 그리고 치료자가 인터폰 스위치를 누르고 나서 8층의 치료실로 올라 와서 치료실 복도로 걸어 오는 모습에 치료자는 역시 놀랬다. 정신분열증 환자를 많이 치료를 해 보았지만 정신분열증 환자가 스스로 약속 시간을 이야기를 하고 그리고 어머니 앞에서 치료실로 스스로 걸어서 치료를 받으러 치료실에 들어선 사람은 Y군이 처음이었다.

 치료자는 치료 컨설팅 시작 때 어머니와 약 10분 동안 면담 후에 어머니는 밖에서 기다리게 하고 1시간 30분간 Y군과 상담 치료가 시작되었다.

 Y군은 고등학교 2학년 때 부모님의 권유로 미국 유학을 가게 되었고 뉴욕에서 4년간 고등학교 과정을 마치는 과정에서 머리 속에서 기계가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는 환청 때문에 귀국해서 서울 대학교 병원에 1.5개월간 입원 후에 퇴원해서 약 5년간 약물 치료를 받고 있다고 했다.

 Y군은 현재의 어려움을 대인관계가 안 된다고 했다. 대인관계에서 어려움들을 이야기를 해 보라고 했을 때 Y군은 상대방과 눈을 맞추기가 어렵다고 했다. 그리고 어떻게 대화를 해야 하는지를 모르겠다고 했다. 지난 주일까지는 어떤 한 출판사에 3개월 동안 다니다가 지금은 쉬고 있다고 했다. 얼마 동안 쉴 것이냐?는 치료자의 질문에 그는 약 1달 동안 쉬게 될 것 같다고 했다.

 그 동안 5년 동안 쉬면서 무엇을 하고 지냈느냐?라는 질문에 Y군은 그냥 매일매일 지냈다고 이야기를 하면서 상세한 것은 피해가는 것을 느꼈다. 치료자가 유학생활에 대해서 질문을 하면서 느낀 것은 Y군이 방어적이어서 자신의 어려움들을 숨기려고 한다는 것을 느꼈다. 휴학 중에 어려움은 없었느냐?라는 질문에 큰 어려움은 없었다고 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미국의 뉴욕에 있는 사립 고등학교에 입학해서 공부를 시작했는데 공부를 잘 하지는 못했다고 했다. 한국에서도 공부를 아주 잘하지는 못했다고 했다. 그는 영어에서 어려움 때문에 고등학교를 졸업할 시점에서는 학점이 미달되어 졸업이 되지 못했고 한 학기를 더 공부를 하는 과정에서 고통스러움 때문에 더 이상 공부를 할 수 없어서 한국으로 귀국을 했고 그리고 환청이 들려서 서울 대학교 병원에서 1.5개월 동안 입원을 했다고 퇴원해서 지금까지 치료를 받고 있다고 했다.

 고등학교 강의 시간에 영어로 듣고 영어로 쓰고 말하는 것에 대한 어려움 때문에 4년간 심리적인 고문을 당했던 것이 정신분열증으로 연결되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세계에서 가장 복잡하고 첨단 도시가 뉴욕임을 이야기를 하면서 치료자는 Y군의 유학 생활에 대해서 파고 들었다. 먼저 어떻게 생활을 했는지?에 대해서 물었을 때 Y군은 한국인이 운명하는 홈 스테이에서 하숙을 했는데 40대 중반의 주인 아저씨는 친절했다고 했다. 홈 스테이를 하는 집에 여러 명의 한국인 하숙생들이 있었느냐?라는 질문에 혼자서 홈 스테이를 했다고 했다. 뉴욕의 고등학교에서는 한국인이 몇 명이나 있었느냐?라는 질문에 약 6명 혹은 7명 정도의 학생들이 있었는데 그들과 친하게 지내지 못했다고 했다. 그는 한국 학생들과 관계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외톨이로 지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뉴욕에서 공부를 하면서 경험한 어려움들을 부모님에게 이야기를 소상하게 했느냐?라고 물었을 때 그는 부모님에게 4년 동안의 자신의 고통을 이야기를 하지 않았고 단지 공부가 어렵다는 정도의 표현은 여러번 했다고 했다. 치료자가 힘들어서 더 이상 공부를 하지 못하겠으니 귀국하도록 해 달라고 부모님에게 요청을 하지 않았느냐?라는 질문에 그러한 요구를 해도 부모님이 허락을 해주지 않았을 것이라고 담담하게 말을 했다.

 3개월간 일을 했던 직장에서 어려움은 없었느냐?라는 질문에 Y군은 큰 어려움은 없었는데 그의 부서의 부장님과 눈맞추기가 어려워서 그 부장님과 이야기를 할 때에는 항상 마루 바닥을 쳐다 보고 이야기를 했다고 했다. 그리고 대화 도중에 어떤 말을 해야할지 몰라서 가장 어려웠다고 했다.

 가족 관계에서 대해서 물어 보았다. 아버지는 개인 사업을 하시는 분으로 어떤 일을 하고 계시느냐?라는 질문에 종업원 2명-3명 정도를 데리고 하는 조그만 사업이라고만 이야기를 했다. 어머니는 전업 주부로 그리고 2살 아래인 여동생이 있다고 했다. 여동생은 무엇을 하느냐?라고 물었을 때 여동생은 대학을 졸업했다고 했다. 어떤 분야를 전공했느냐?라고 했을 때 악기를 다루는 분야를 졸업하고 지금은 일자리를 찾고 있다고 했다. 음악에서 기악을 전공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여동생은 문제가 없느냐?라는 질문에 여동생은 문제가 없다고 했다. Y군이 현제 몇 살이냐?고 물었을 때 그는 현재 21살이라고 했다. 치료자는 그 말을 사실 그대로 믿었다. 고등학교 졸업 후에 한국에 귀국해서 대학 진학이나 혹은 앞으로 회복이 되면 한국에서 대학 진학을 할 생각이 없느냐?라고 미래에 대한 질문을 했을 때 Y군은 대학에 갈 생각이 없다고 했다. 공부는 별로 뜻이 없었다. 그는 앞으로 직장에 들어가서 일을 하면서 살겠다고만 이야기를 했다.

 1시간 30분 후에 치료자는 어머니를 불러서 1시간 30분 동안 Y군과 면담한 결과를 요약해서 설명을 해 주었다. Y군은 고등학교 2학년 때 미국에서 가장 번화 도시인 뉴욕으로 유학을 갔었고 유학 생활 4년 동안에 받은 심리적인 고통을 누구에게도 하소연하지 못하고 마음 속에 가두어둔 그 고통이 환청으로 나타나서 정신분열증으로 연결된 것 같다고 설명을 했다. 특별히 Y군 한데서 인상적인 것은 Y군이 스스로 인터폰에 치료 약속을 한 사람이라고 말을 한 점 그리고 치료실의 복도에서 걸어오면서 어머니 앞에서 스스로 치료를 받고 싶다고 제발로 걸어서 치료자에게 온 것 그리고 스스로 대인관계 때문에 대인관계를 고치고 싶다는 말을 한 것 그리고 심리치료를 받고 싶다는 말을 스스로 한 것 등을 미루어 볼 때 치료를 받도록 부모님께서 지원을 해 달라고 요청을 했다. 치료에는 시간이 많이 걸리겠지만 치료의 예측 진단을 좋을 것이라고 치료자의 견해를 더 붙였다.

 어머니는 중산층의 유학 바람에 아들을 미국으로 고등학교 2학년 시절에 떠밀어서 유학을 보낸 것이 화를 자초한 것을 뒤늦게 깨닫게 되었다고 후회를 한다고 했다. 아들이 5년 동안 약물 치료를 받으면서 많이 호전이 되었고 지금은 외형적으로는 큰 어려움이 없어 보인다고 했다. Y군의 행동이 지금은 정신분열증적인 증세들은 거의 없고 정상적으로 보이는데 대인관계에 어려움 때문에 사회생활에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고려되어 아버지가 추천을 해서 오늘 아들을 데리고 치료자와 컨설팅을 하게 되었다고 했다. 치료자가 Y군이 21세여서 앞으로 얼마든지 시간이 있으니 다시 새 출발을 할 수 있다고 햇을 때 어머니는 아들이 21세가 아니고 지금은 30세라고 했다. 아들 Y군이 출판사에서 3개월간 일을 했는데 그 쪽에서 다른 곳에서 일을 하는 것이 좋겠다는 연락이 와서 지난 주일에 회사를 그만 두었는데 대인관계의 어려움 때문이라고 했다. 그 회사에서 3개월간 일을 하면서 아들이 자신감이 많이 생기고 많이 호전되었다고 했다. 치료자의 설명을 들으면서 치료를 받게 하겠다고 약속을 하고 두 사람은 돌아갔다.

 2일 후에 Y군이 휴대폰으로 월요일 10시에서 12시까지 그리고 목요일 10시에서 12시까지 1주일에 2회의 치료 회기로 1주일에 4시간씩 심리치료를 받겠다고 약속을 했다. 치료자는 치료 비용을 은행 구좌로 입금을 부탁하고 목요일에 아침에 치료 비용이 입금이 되고 나서 10시에 Y군이 도착을 해서 첫 치료 회기가 시작되었다.

 

 제 1회 치료 회기

 Y군은 뉴욕의 사립학교인 W고등학교에 들어가게되었다고 했다. 미국에 들어갈 때 부모님이 같이 간 것이 아니고 그냥 미국 뉴욕까지 혼자서 비행기를 타고 케네디 국제 공황에서 택시를 타고 호텔에서 묶에 되었고 인근에 2개의 고등학교에 인터뷰를 했고 W고등학교에 입학 허가를 받아서 인터넷에서 홈 스테이를 찾아 그곳을 방문하고 나서 40대의 한국인 남자가 주인으로 있는 홈 스테이에서 머물면서 고등학교를 시작했다고 했다. W 사립 고등학교에는 한국인 학생들이 7명 정도가 있었는데 그들과 접촉이 거의 없었다고 했다. 그의 학급에는 학생 수가 7명 정도로 외국인 학생으로 중국 본토에서 온 S군이 있었고 그리고 Y군이 유일한 외국인이었는데 S군은 영어를 잘했다고 했다.

 미국 유학을 어떻게 해서 가게 되었느냐?라고 물었을 때 Y군은 부모님의 권유로 유학을 하게 되었는데 자신의 유학가고 싶은 생각도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라고 했다. 치료자가 100%, 50% 그리고 0%로 계산해서 부모님과 Y군은 각각 몇 퍼센트로 유학을 가게 되었느냐?고 물었을 때 Y군은 부모님이 80%, 그리고 Y군 자신이 20%의 생각으로 유학을 가게 되었다고 했다.

 공부를 하는데 어려움을 물었을 때 그는 영어에서 독해가 어려웠다고 했다. 단어와 문장을 읽어가는 수준이 빈약해서 공부에 어려움을 느끼지 시작했다고 했다. 쓰기는 어떠했느냐?라는 치료자의 질문에 쓰기가 거의 없어서 큰 문제가 없었다고 했다. 시험은 4지 선다형으로 그 중에 한 개를 표시를 해서 컴퓨터로 점수를 매기는 시험이 대부분이어서 점수가 낮았지만 쓰기 때문에 고통은 받지 않았다고 했다.

 치료자는 30년 전에 1982년 8월 3일날 미국 L.A.로 유학을 떠난 치료자의 이야기를 해 주면서 Y군이 지루하지 않도록 배려를 해서 치료자의 유학 생활의 어려움들에 비유를 해서 Y군의 유학 생활에서 어려움들을 분석하고자 했다. Y군에게 유학 생활에서 가장 어려운 부분이 쓰기였다는 것을 지적하면서 Y군이 쓰기에 어려움이 없었느냐?라고 넌지시 물었을 때 Y군은 OMR 카드에 숫자를 기입하는 4지 선다형 시험들이었기 때문에 쓰기를 따로 공부하지 않았다고 했다. 성적은 하위 수준에서 그런대로 시간은 잘 지나갔고 부모님이 중간에 몇 번 뉴욕에 Y군을 방문했다고 했다. 그러나 Y군은 자신이 공부하면서 받는 고통들을 참고 입밖으로 내지 않았고 누구에게도 친구나 돌보미 아저씨 등에게 하소연하지 않았고 참고 견디면서 고통이 누적되어가면서 이것이 폭발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문제는 졸업를 하는 해에 학점이 미달되어 졸업을 할 수 없었고 다시 한 학기를 더 하게 되면서 지금까지 쌓였던 문제가 폭발하게 되었음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Y군은 절대로 자신의 어려움들을 실토하지 않았다. 자신을 단단하게 방어를 하고 있다는 것을 치료자가 몸소 느낄 수 있었다.

 치료자는 다시 학급에서 기억나는 친구들에 대해서 질문을 해 보았다. Y군은 중국 본토에서 온 S군과 그리고 백인 미국한 J군과 가까웠지만 다른 학생들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선생님으로 기억이 나는 사람은 W 고등학교 교장 선생님인 젊은 남자 선생님이 친절하고 따뜻하게 대해주셔서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치료자는 Y군에게 치료자를 만나서 이야기를 하는 것이 고통스럽지 않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대화를 하는 것이 즐겁다라는 것을 인식시키려는데 치료의 초반기 초점을 맞추었다. 다른 환자들처럼 과거의 상처를 끄집어 내서 분석으로 생각과 행동을 수정하려고 하면 반발이나 거부감을 불러 일으킬 것이라고 예상이 되어져서 Y군이 비록 방어적이어서 자신의 내면을 스스로 밝히려고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은 알 게 되었지만 그러나 가벼운 즐거운 유학 생활에서 느낀 이야기들을 하게 함으로써 치료자와 대화 도중에 긴장하지 않고 긴장을 풀어내서 편안하게 이야기를 하도록 하는데 치료의 초반기 초점을 맞추는 것이 Y군의 정신분열증 증세를 극복하고 대인관계를 새로 배우는데 지름길이 될 것이라고 확신을 했다.

다음의 홈 페이지에서는 Y군의 주변 상황에 대한 정보가 수집되어지고 있다. 특별히 치료자는 Y군의 치료 효과를 눈에 띄도록 하기 위해서 Y군을 강압적으로 밀어 붙여서 긴장감과 껄끄러움을 느끼게 하지 않으려고 조심을 하고 있다. 다음의 홈 페이지에서는 Y군의 가족구성원들과 관계 그리고 그의 일상생활들이 하나씩 밝혀지고 있다. Y군은 대화를 하는데는 큰 어려움은 없었다. 단지 방어적이고 자신의 고통, 문제들을 이야기를 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 느껴지지만 치료자가 묻는 말에는 정직하게 속이지 않고 이야기를 하고 있음이 느껴졌다. 다음의 홈 페이지에 들어가 보세요.